“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고대 그리스 7 현자 중 한 명인 탈레스가 대답하기를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다” 했다. “그럼 가장 쉬운 것은?” 역시 탈레스가 대답했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

물론 내게 있어서도 나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자식을 안다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내가 내 자신을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듯이, 내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실랑이를 벌이는 걸 보면 그게 그리 녹록지가 않다. 이러면서도 난 아이에게 충고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곤 하는데 이러고 보니 내게도 가장 쉬운 것은 자식에게 충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충고는 사랑이라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충고라는 애꿎은 소리를 하게 되지만, 사랑이 잔뜩 깃든 충고의 말에 아이의 표정은 밝은 적이 없다.

40년 전,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리를 모아 놓고 공자 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다. “한 끼 점심은 굶어도 한순간이라도 정심(正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훈도가 시작되면 동생이나 누나나 나나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첫 마디가 “또”였다. 그리 잘 알면서도 내 자식에게 또 거듭되는, 사랑을 빙자한 충고들. 사실 진실한 사랑에서 비롯된 충고이긴 하다. ‘내가 못 다한, 그러나 넌 할 수 있을’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쯤은 이젠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아이만은 참으로 잘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입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할아버지가 된 내 아버지께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내 뜻만큼 되지 않는 게 아이들이야. 자식농사처럼 어려운 게 없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옛날의 잊지 못할 그 일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때쯤이니 무척 오래된 일이다. 일본 국내 여객기 추락사고가 났는데, 생존자가 거의 없는 대형 사고였다. 유물 수색작업 중에 담배 겉봉에 무언가 적은 쪽지가 발견됐다. 한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으니 유언이나 다름없는 글이었다.

"건강하게 자라라.
뜻을 굽히지 말고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진하여라.
곁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일찍 떠나서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지극히 담담한 이 몇 마디의 글은 당시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퍼졌었다. 이 일본 아버지의 마지막 충고는 오랫동안 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를 취재하며 생존자 한 명을 인터뷰할 때였다. 그는 죽음 앞에서 도저히 침착해질 수 없었다고 했다.

“앞뒤좌우로 불길이 치솟고,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아비규환이 이어지고 있을 때의 그 공포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불길이 내게 다가오는 순간, ‘나도 곧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나갔는데도 그 통증을 느끼지 못할 만큼, 그 두려움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밤이라서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었을 정도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 일본인 아버지는 자식에게 남기고자 담배 겉봉을 뜯어 유언을 쓸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오래전 기억을 부모가 된 지금 다시 돌아보니 울컥 눈물이 올라올 만큼 감동이 되고 가슴이 아리다.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지나치다 할 만큼 너무나 충실한 우리 부모들은 박봉에 아이들 과외비를 벌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일 수 있는 40대와 50대를 보낸다. 이쯤 하면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부모인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만약 우리 부모들이 추락하는 여객기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탈레스는 또 다른 질문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 그는 주저할 것 없이 “목적에 달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네 부모들이 우리 자녀를 키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남들보다 좋은 대학 보내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식 과잉보호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랑? 우린 이것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사랑으로 포장해 놓고 사는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천사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들려준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부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우리네 부모들이 한번 곱씹어 봐야 할 때가 늦었지만 이제 된 듯하다.

- 『부모로 산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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