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게 생활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피노키오!” 사람들 속에서 나무인형으로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무인형이 하는 말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나무인형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둘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난 교직 사회에서 피노키오였고, 지금도 피노키오다. 나무인형의 눈에는 나무인형이 보이는 법, 나는 오래지 않아 교실마다 가득 들어찬 피노키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목련을 좋아하는 나는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을 거닐며 하얀 등불 같은 목련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계단 아래 앉아 훌쩍이고 있는 영민이를 만났다. 나는 울고 있는 영민이의 옆에 다가가 앉으며 왜 울고 있느냐고 부드럽게 물었다. 영민이는 눈물 맺힌 얼굴을 들어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선생님, 죽고 싶어요.” 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만 아홉 살짜리 아이가 진심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한다니.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기 쉬운, 도덕과 상식에 기초한 교훈조의 연설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일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영민이의 손을 잡고 학교 앞 문방구로 가서 떡볶이를 사주었을 뿐이다.

영민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일주일간 나는 아이들 6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종이를 나눠주고 무슨 이야기든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죽고 싶다’고 적은 종이들이 열 명에 두세 명꼴로 나왔다. 이유는 학원 스트레스, 학교 부적응, 친구 문제, 가족 문제 등 여러 가지였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보았다는 아이들도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나 되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며칠을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마침내 학교에 상담실을 차리기로 했다. 학교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쓰는 교실을 상담실로 활용하기로 했다. 교실 앞문에 ‘피노키오 상담실’이라고 써 붙이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고민이라도 좋다. 특히 죽고 싶다는 어린이 대환영이다. 시간은 아무 때나 좋지만,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든지 찾아와라.”

사실 말이 상담이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고 두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고 있는 아이에게 외계인 침략설 운운하며 “여자 친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구를 지키는 일 아니겠니?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네 소중한 힘을 지구를 위해 써줘”라고 이야기하는 식의 상담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선생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는지 아이들에게 꽤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상담을 끝낸 뒤 아이들에게 학교 앞 문방구의 500원짜리 컵 떡볶이 한 개와 국적불명의 200원짜리 음료수 한 개를 내밀면, 꺼이꺼이 통곡 소리를 쏟아내던 아이의 입은 두 귀에 걸렸고, 어느새 아이는 “선생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힘내서 열심히 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바윗덩이만큼 무거운 고민을 들고 오는 어린이들에게 딱히 해준 게 없다. 그저 썰렁한 농담으로 아이들을 웃기거나, 불량 식품을 사주거나, 그냥 열심히 들어주는 일밖에는. 그런데도 아이들은 스스로 제 마음속에 든 바윗덩이를 내던져 버렸다. 물론 이러한 작은 상담 테크닉들을 배우는 데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함부로 손을 내밀었다가 도리어 발길질만 당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엎어지고 깨지는 동안 나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배웠다. 그 ‘거리’라는 것을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면 ‘존중’과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 자신에게 지혜롭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어 보이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면서 스스로를 치료한다.

동화 『피노키오』는 해피엔딩이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배은망덕한 피노키오로 인해 감옥에 끌려가기도 하고, 가출한 피노키오를 찾아 헤매다가 거대한 상어에게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감옥에서 돌아온 제페토 할아버지는 단벌 외투를 팔아서 피노키오에게 교과서를 사준다. 상어 뱃속에서 2년 동안이나 고생하면서 살다가 피노키오를 만났을 때도 화를 내며 꾸짖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 사랑이 기적을 일으켜서 피노키오를 착한 아이로 변화시키고, 피노키오는 요정에게 인정받아 진짜 사람이 된다.

그러나 『피노키오』의 엔딩 부분에는 피노키오 못지않은 문제 아이 ‘호롱불 심지’가 나온다. 그런데 이 아이는 피노키오와 정반대로 인간에서 당나귀로 변해 일만 하다가 병들어 죽는다. 나는 『피노키오』를 읽다가 호롱불 심지가 죽어가는 장면을 접했을 때 무척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 학교에 얼마나 많은 ‘호롱불 심지’들이 존재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롱불 심지는 피노키오와 달리 왜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호롱불 심지에게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집에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 완벽한 아이인가? 아니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인가?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제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변화에 성공한 아이들을 살펴보면 그 뒤에는 작은 제페토 할아버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 번 꾸짖기보다는 열 번 믿어주고, 열 번 지적하기보다는 백 번 격려해주는 부모 또는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를 가진 아이에게 피노키오의 운명을 안겨주느냐, 호롱불 심지의 운명을 안겨주느냐는 우리가 작은 제페토 할아버지의 길을 선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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