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대해 상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생각한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에 있는 샘터마을로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샘터마을은 선호재, 정숙자 부부가 치매 노인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들이 이 공간을 마련한 데는 마음 아픈 이유가 있다. 정숙자 님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5년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치매에 걸린 것이다. 그들 부부는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연고지가 없는 네 분의 치매 노인을 모셔온 것이다. 이것이 샘터마을의 시작이다.

다섯 분의 노인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룬 부부는 그 마을에서 가장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치매가 어머니처럼 기억을 못 하거나 밖으로 나도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정숙자 님은 다섯 분의 노인을 모시면서 깜짝 놀랐다. 대소변을 가리는 건 물론이고 평소에는 힘이 없어 누워만 있던 분이 어느새 창문을 뛰어넘고 문을 부수기도 했다. 이 느닷없는 소동들을 감당하기 위해 부부는 치매에 대해 공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두 해가 지나고 샘터마을에는 치매 노인이 하나둘 늘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60명의 어르신이 살고 있었다.

내부는 방 안에 방 그리고 그 안에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첫 번째 방부터 마지막 다섯 번째 방까지 치매의 정도에 따라 어르신들이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마지막 방에는 모든 기억을 잃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어르신들이 있었다. 깔끔하고 부지런한 부부는 어르신들을 위해 매일 세탁해 새하얀 옷을 입혀놓았다. 그래서인지 그 방에 있는 어르신들은 모두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가만히 앉아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현실인지 다른 세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눈동자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의 그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울에 외출을 할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집 안은 나의 이런 기묘한 기분을 더욱 자극했다.

날이 따뜻하면 부부는 할머니들을 한 분씩 모시고 일산호수를 산책하곤 했다. 하루는 한 할머니를 모시고 나갔는데 할머니가 애들 노는 소리만 나면 당신 손주인 줄 알고 쫓아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어요. 그저 손주가 그리워서 애들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데, 애처로워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있어야죠. ‘가정에 백발노인과 아이가 있는 집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옛말이 있잖아요. 그 말처럼 노인과 아이는 가정에 꼭 필요한 존재예요. 샘터마을 어르신들도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와주면 제일 좋아해요.”

부부의 꿈은 샘터마을을 아이와 노인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록 겨울마다 연료비를 걱정하느라 잔주름이 늘었지만 그 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부부는 꾸준히 치매에 대해 공부했고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다. 그들의 정성으로 증세가 호전된 치매 노인들도 있다. 학계에서도 치매 연구를 위해 견학을 올 정도였다. 하지만 부부는 치매 어르신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은 ‘사랑’이라 했다. 항상 눈 맞추고 귀 기울여주는 마음, 해서 어르신들이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 존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치매 어르신들과 한방에 앉아 있으면서 묘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듯 허공에 시선을 두고는 눈망울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따금 아기처럼 해맑게 웃었다. 마치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나는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 집을 나서면서 만약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에서
(J. 페페 지음 / 현자의숲 / 332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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