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적의 제왕 제록스에 도전한 캐논
1970년 캐논(Canon Inc.)은 마침내 보통지 복사기 NP-1100을 88만 엔에 발매했다. 제록스가 쌓아 올린 특허의 벽을 뛰어넘은 독자적인 방식의 복사기였다. 1962년에 제1차 장기 경영 계획에서 다각화를 발표하고 불과 수 명의 멤버로 연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캐논은 제록스의 주요 고객이었던 대기업을 피하고 중기업에 주력했고, 1982년에는 카트리지 방식을 채용한 3색 컬러복사기 미니카피어 PC-10을 24.8만 엔에 투입하며 중소·영세 기업까지 고객으로 개척해 나갔다.


1962년 당시 제록스는 보통지 복사기 시장에서 600건에 이르는 특허와 종량 과금제 대여 방식을 통해 “앞으로 20년 동안은 절대 허물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철벽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상태였다. 그런 제록스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기업은 전 세계에 단 한 곳도 없었다. 보통지 복사기 시장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이익이 날 수 있는 시장’이기는 했지만 ‘이익을 낼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지셔닝을 강조하는 경영학자들이 볼 때 캐논의 ‘도전’은 무모한 일본 기업의 ‘폭주’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도전은 성공했고, 캐논은 카메라 제조 회사에서 사무기기 제조 회사로 변신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제록스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이라면 커다란 기회다. 다른 회사는 뛰어들지 않을 터이니 우리만 뛰어든다면 점유율을 절반쯤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시 캐논의 경영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 기술력을 무기로 빅3에 도전한 혼다
1959년에 오토바이로 미국 시장에 뛰어든 혼다는 악전고투 끝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이어서 1963년에는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1970년에는 미국 본토에서 판매를 개시했다. 그러나 T형포드(1908) 이래 60년 동안 빅3(포드, GM, 크라이슬러)에 익숙해져 오랫동안 이들의 자동차를 이용해 온 미국의 ‘풍요로운 대중’들에게 시빅(civic)을 중심으로 한 일본제 소형차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품질도 아직은 높다고 볼 수 없어서, 말 그대로 ‘싼 게 비지떡’인 상품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기업 규모를 보면 GM과 혼다는 68배나 차이가 났다. 빅3 중 최하위인 크라이슬러만 해도 혼다의 13배가 넘는 규모였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혼다가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러나 혼다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도요타와 닛산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더 시장이 큰 미국에서 승부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에서 머스키법(1970)이 의회를 통과했다. ‘5년 안에 배기가스의 유해 성분을 10분의 1로 줄일 것’을 자동차 업계에 의무화하는 법안이었다. 이에 빅3는 입을 모아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혼다 소이치로는 ‘불가능하니까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리더인 구메 다다시와 이리마지리 쇼이치로 등의 혼다 기술진이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환경 엔진 CVCC가 세계 최초로 (머플러 등의 후처리 없이) 머스키법의 기준을 통과함으로써 그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여기에 석유 파동(1973)이 찾아오자 소비자들은 연비가 높고 배기가스가 적은 혼다의 소형차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혼다는 드디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1977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MBA 과정 학생들에게 이런 ‘쉬운’문제를 냈다.

“혼다는 세계의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야 할까?”
그리고 “네”라고 대답한 학생들에게 낙제점을 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2. 강력한 경쟁 상대가 이미 미국과 일본, 유럽에 있다.
3. 혼다는 자동차에 관한 경험이 전무에 가깝다.
4. 혼다는 자동차의 유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혼다는 아직 빅3에 비해 규모가 몇십 분의 1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인 1977년에 혼다는 65억 달러를 투자해 일본 기업으로는 최초로 오하이오에 오토바이 생산 공장을 지었고, 5년 뒤인 1982년에는 마침내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회사 안팎에서 “정말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며 품질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가운데 내린 결단이었다.

이리마지리 쇼이치로가 이끄는 생산회사 HAM(Honda of America Manufacturing)은 종업원을 워커(Worker)가 아니라 엔지니어(Engineer)라고 부르고 혼다의 철학과 생산 이념을 현지에 맞게 수정한 ‘혼다 웨이’를 앞세워 압도적인 고품질과 높은 생산성을 달성했다. 그러나 사실 혼다는 1976년에 이미 성공 가능성을 느꼈다. 당시 제휴 타진을 받고 포드의 기간 공장을 견학한 혼다의 간부는 그 압도적인 규모에 놀랐지만, 그와 동시에 생산 사고와 생산 방식이 낡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혼다는 이미 로봇을 사용한 용접과 신속한 금형 교환 등을 통한 일관 생산으로 대량 생산에 의존하지 않는 고생산성을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다는 미국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혼다는 규모와 경험 곡선이라는 기존의 벽을 멋지게 돌파했다. 루멜트가 MBA 강의에서 “혼다는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에 진출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린 지 8년 뒤 1985년 그의 아내의 차는, 혼다 자동차였다고 한다. 품질은 높으면서 크기와 가격은 적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 『경영전략 논쟁사』 중에서
(미타니 고지 지음 / 엔트리 / 464쪽 /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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