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전쟁』(닉 스켈론 지음/미래의 창)중에서

1950년대 후반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 오토바이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은 60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국내 경쟁업체들을 무찌르고(마지막 경쟁사는 1953년에 문을 닫았다)오토바이 시장의 70%를 석권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할리는 미국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1959년 혼다가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하자, 옵저버들은 혼다가 할리를 대적하는 것은 마치 가미가제식 공격을 하는 것, 즉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혼다가 할리와 정면승부를 벌였다면 그들의 예상이 맞았을 것이다. 혼다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할리 데이비슨에 비해 크기가 작은 소형 오토바이를 갖고 할리의 전통적 고객들에게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혼다는 할리와 전면병참전략으로 맞붙기로 결정했다. 혼다는 또 할리의 전통적인 힘, 즉 미국 오토바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할리를 애용하는 고객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연구 끝에 혼다는 할리의 약점을 알아냈다. 미국 오토바이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배기량이 큰 할리가 자동차보다도 가격이 비쌌다는 점과 할리 오토바이족들에 대한 사람들이 갖는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미국사람들 대부분은 오토바이를 타 본 적도 없었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말론 브란도의 영화<와일드 원(The Wild One)>에 나오는 가죽옷을 걸쳐 입은 부랑자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다 할리를 파는 상점 대부분이 도시의 외진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상점의 외양도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 이런 이미지가 할리를 반항아 이미지를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 이것은 기존 시장을 독점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긴 했지만, 한편으로 시장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가 되기도 했다.

혼다는 전면전투전략으로 할리의 전통적 시장을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대신 혼다는 할리가 그 동안 무시해 왔던 시장에 전력을 다하여 공격의 교두보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부모들의 자동차 말고, 별도의 이동 수단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스스로 차를 살 능력은 없는 대학생들이었다.

도로가 번잡한 일본의 인구 밀집지역에서는 오토바이가 학교나 직장을 오가는 편리하고 저렴한 교통수단으로서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혼다는 이 점에 착안해 미국 시장에서도 일본과 같은 용도로 오토바이가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다는 미국 시장 진출 첫 해에 고작 167대를 파는데 그쳤고, 할리 데이비슨은 혼다의 제품이 미국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웃었다. 할리도 1925년과 1949년 배기량이 낮은 오토바이를 선보이려고 노력했지만 두 차례 모두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리는 배기량이 낮은 오토바이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혼다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리의 시도가 실패했던 이유는 배기량이 낮은 오토바이가 전통적인 오토바이와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돈 가치를 제대로 못할 것으로 여기고 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혼다는 자사의 오토바이가 가격이 저렴하고 연비가 높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내의 주차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상적인 제품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홍보했다. 이것은 이제까지 오토바이 하면 떠오르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혼다는 "혼다와 행복을 잡으세요"라든가 "혼다를 타면 가장 좋은 사람을 만납니다.", 또는 "할리데이가 아닌 혼다데이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잘 생기고, 자상해 보이고, 깨끗한 용모의 젊은 모델을 기용한 광고를 내보냈다.

혼다의 이러한 전략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오토바이 소유자들, 즉 오토바이를 구입할 생각조차 못했거나 비싼 가격 때문에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도 구입을 망설였던 16∼26세의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혼다 오토바이를 처음 구매한 사람들 세 명 중 한 명이 20세 이하였다는 사실에서 이 전략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다는 또 할리에 비해 다양한 색상과 모델을 선보였다.(1965년까지 14종의 각기 다른 제품이 나왔다.)

혼다는 할리의 느끼하면서도 터프한 이미지가 자사의 제품에 맞서 성공적으로 경쟁을 벌일 수 없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할리의 이런 이미지는 신규 시장 진출에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할리는 혼다의 전략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오토바이 시장에서 혼다의 매출이 오른다 해도 자사의 매출은 그다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다는 일단 할리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소형 오토바이 부문에서 명성을 쌓은 후, 기습병참전략을 써서 다음 시장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마침내 혼다는 할리와 직접 대결하기로 결심하고, 고가의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새로운 고객들을 겨냥하여 대형 오토바이를 선보였다.

이 전략은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 1964년 혼다는 총 27만 대의 오토바이를 팔았으며, 1965년에는 시장점유율을 80%로 끌어올렸다. 전체 오토바이 시장의 크기도 덩달아 커졌다. 1960년에 40만 명에 불과했던 오토바이 이용자의 수가 1964년이 되자 140만 명으로 늘어났고, 1971년에는 다시 4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렇듯 급속한 성장의 배경에는 할리 데이비슨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리는 혼다에 맞서 생산을 급격히 확장하던 중 그나마 별로 좋지 않았던 제품 성능이 더욱 악화돼 전체 시장점유율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할리의 전통적인 강세는 이제 새롭고 규모가 더욱 커진 시장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혼다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할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본 제품 때문이었다. 1977년이 되자 과거 70%에 달했던 할리의 시장 점유율은 6%로 떨어졌는데, 그 주요 원인은 할리의 전통적 강세가 별로 먹히지 않는 시장분야를 의도적으로 선택해 공격한 혼다의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할리는 힘을 모아 텃밭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자기만족(complacency), 과신(confidence), 오만(conceit)이라는 소위 3C의 희생자가 되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 혼다를 얕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결과는 파국이었고, 할리는 거의 부도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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