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굳이 힘들게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민간인 복장을 한 사람이 경찰복을 입은 사람을 두들겨 패고 쇠고랑을 채우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범죄자가 경찰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부 용감한 시민은 사복 입은 자를 제압하거나 일부는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경찰복을 입고 사기를 치던 범죄자를 사복 경찰이 제압하는 상황일 거야’라고 뒤집어 생각하는 사람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늘 진실은 아니고 또한 전부도 아니다. 따라서 숨어 있는 사실이나 가치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판매자도 상품의 숨은 가치가 고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뜻 봐도 값싸 보이는 물건에 턱없이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면 아마도 그 상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값을 받으면서도 고객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려면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제품의 숨은 가치를 보여주는 창의적 노력이 가격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텔의 경우이다. 인텔은 중앙연산처리장치(CPU)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만큼 가격도 비쌌다. 그러나 자유경쟁 사회에서는 아무리 기술 독점력이 뛰어나도 결국 경쟁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마침내 경쟁자로 등장한 AMD는 자사의 중앙처리장치 속도가 다소 떨어져도 고급 사용자가 아닌 이상 크게 불편한 점은 없기 때문에 기술력이 떨어짐에도 저가 공세를 통해 시장을 점령해 들어갔다. 컴퓨터 제조회사들은 AMD의 제품을 사용하면서 컴퓨터의 가격을 낮추고 동시에 인텔에 AMD만큼 가격을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적으로 경쟁자가 시장에 새로 들어오면 선발 기업들은 가차 없이 가격을 후려치고 시장을 교란시킨다. 이제 본격적인 가격 경쟁의 서막이 오를 참이었다. 그러나 인텔은 뜻밖에도 가격 경쟁 대신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스티커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가 적힌 스티커를 컴퓨터의 본체 외부에 부착하도록 함으로써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브랜드 파워를 더 강화시켰다. 인텔은 창의적 발상으로 이미 있는 가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격을 내리지 않고도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동네 앞의 한 작은 트럭에서 전기 구이 통닭을 팔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 치킨집에서 파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해 사려고 하다가도 트럭에서 팔고 있어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체로 위생이나 품질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더욱이 좋은 재료를 사용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그 트럭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하림의 닭만 사용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 께름칙했던 마음을 접고 통닭을 샀을 것이다. 트럭 통닭 판매자는 인텔 인사이드처럼 하림이란 브랜드의 신뢰도를 활용해 자신이 파는 통닭의 숨은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한 동네에 기사 식당이 있다. 모든 메뉴가 대개 4~5천 원 선이다. 같은 장소에서 오래 했기 때문에 단골도 많았고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옆 건물에 해장국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 식당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곳은 콩나물 해장국을 3천 원에 팔았다. 맛도 나쁘지 않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주머니가 가벼워진 손님들이 그 집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기사 식당 주인은 가격 인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렇지만 가격을 내려선 수지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눈 뜨고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때 중국산 김치 파동이 일어났고 기사 식당 주인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식당 문 앞에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담그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과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해 중국산 김치를 쓰지 않고 김치를 직접 정성스럽게 담그는 집이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손님이 원래 보다 더 늘어났다. 식당 주인이 한 일은 부엌에 숨어 있던 김치 담그기를 가게 앞으로 끌고 나온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물은 늘 객관적이지 않다. 벌레 먹은 상추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하품의 제품이 될 수도 있고 값비싼 유기농 제품이 될 수도 있다. 한 농가에서 상추를 심었는데 제때 농약을 주지 못해 다 자란 상추는 잎의 크기도 작고 여기저기 벌레가 먹어 상품으로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낙담하지 않고 여기에 유기농 제품이란 타이틀을 달자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렸다. 어떤 가치를 통해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내가 파는 제품의 의미를 늘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가치의 재해석이 가능해지면 그동안 외면받던 제품이 소중해지고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미 주어진 해석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질 필요도 있다. 과거에 동양인들은 다리가 짧고 키도 작아 피겨 스케이팅에서 결코 좋은 점수를 낼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일본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어느 순간 다리가 쭉 길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답은 바로 타이츠에 있다. 살색 타이츠로 스케이트까지 감싸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동양인의 아담한 체구와 유연한 몸은 커다란 장점으로 바뀌고 이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해석에 의문을 던지면서 시작된 변화이다. 더불어 사물을 늘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가치를 재해석해 상승시킨다는 것은 제품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발견해 부각시킨다는 의미이다. 내 제품의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그 안에 존재하는 긍정성을 발견해야 한다. 세상에는 100퍼센트 긍정적인 것도 100퍼센트 부정적인 것도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적 측면을 보려는 노력이 제품에 대한 가치의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 『가격의 경제학』 중에서
(조성기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15쪽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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