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외교정치는 늘 점검과 조절을 수반하며, 또한 유연하다. 성공적인 외교정치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운신의 폭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스라엘만큼은 예외다. 메르켈에게 이스라엘은 마음으로 연결된 나라다. 이스라엘은 그녀의 외교정치 좌표의 기본 축에 속한다. 중요도 면에서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만하다. 독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그녀가 총리로서 세운 정치원칙은 독일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정치는 유대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후원이고 역사적 의미가 강했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그녀의 정치에서 이 나라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적 맥락에서 독일의 의무로 여긴다.

메르켈은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쓰고 독일에서도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쇼아(Sho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언어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홀로코스트란 번제물로 바쳐져 완전히 불에 타 죽은 동물을 표현하는 옛 단어다. 1978년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와 이 시기에 워싱턴에 건축된 유대인 학살 추모박물관에 대한 토론에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고 주로 영어권과 독일어권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번제물이라는 종교적 관련성 때문에 특히 이스라엘에서 거부된다. 유대인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 학살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이 무시된 행위였고 이념에 취한 피에 굶주린 독재자의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대재앙’ 혹은 ‘참사’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아’를 사용한다. 메르켈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또한 이 특수한 만행에 대한 메르켈의 이해와 이스라엘의 이해가 많이 닮았음을 보여 준다.

메르켈은 독일의 잘못과 유대인 학살의 특수성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연설에서 자주 다루었다. 그녀는 역사로부터 받은 임무와 문명 파괴 개념을 강조했다. 그녀는 총리 임기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네 번이나 방문했고 이스라엘 의회 등에서 연설을 했다. 그녀는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받았다. 2009년 그녀는 유대인 대(大)박해의 밤 70주년 기념연설을 했다. 이 기념연설에서는 쇼아로 인한,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책임이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쇼아에 대한 기억으로 특별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은 영원할 것입니다.”
메르켈의 쇼아 연설에는 두 가지가 등장한다. 첫째,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외국인 혐오증, 인종주의, 반유대주의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학살의 교훈이다. 메르켈은 외국인 혐오증,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이 세 가지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때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주의가 반유대주의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오늘날 인종주의가 유대인 증오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다.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메르켈의 임무가 생긴다. 유대인 사회와 독일의 관계 후원하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안전과 공동 가치를 위해 애쓰기. 이스라엘에 대한 메르켈의 관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가치다.

또한 메르켈은 역사의 보전을 염려한다.
“시대의 증인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쇼아의 기억을 보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의회에서 그녀가 물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삶의 증인과 만행이 너무나 빨리 망각 속으로 사라져 늘 새롭게 놀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쇼아를 직접 겪었던 세대가 더는 우리 곁에 없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역사적 책임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메르켈은 상대화와 역사 왜곡의 문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기민연(기독교민주연합)의 보수기독진영과 충돌했다. 2003년 연방의회 의원인 마르틴 호만은 의회 연설에서 독일을 가해자 민족으로 상대화하고, ‘악한 이념을 가진 못된 패거리’였다고 표현했다. 호만은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며 나중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연결하여, 유대인을 ‘가해자’로 보는 시각에도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기민연 당대표였던 메르켈은 호만을 원내에서 징계하고 그 발언에 대해 사죄할 것을 촉구했으며 끝내는 호만을 당에서 제명시켰다. 메르켈은 호만의 발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특수한 행위로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자유·일치·주권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정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역으로 해석하면, 독일이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과거를 처리했더라면 독일의 자유·일치·주권은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에 의해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2007년 9월에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성장과 사회정의, 유엔을 통해 체화된 국제법 그리고 필수적인 가치들이 이 세계를 단단히 묶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모든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습니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합니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독일 총리인 나에게 이스라엘의 안전은 결코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이 검증의 시간에 빈말로 남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2008년 메르켈은 건국 60주년을 맞은 이스라엘의회에서 연설을 한 뒤 예루살렘 근교의 아드 바셈에 있는 쇼아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메르켈은 쇼아로 희생된 150만 명의 어린이들을 추모하고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정부는 쇼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독일과 이스라엘의 첫 공동 내각회의를 통해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재차 강조하는 바다.”

그녀의 표정이 유난히 침통했다. 아드 바셈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일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수 있었을까?

-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중에서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지음 / 책담 / 384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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