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이었다.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캐나다인 교사 클레이 리비트는 흥미로운 현상에 주목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영어를 배우는 10대 아이들이 물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MTV에서 나오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특히 미국에서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스트리트 패션을 선호했어요. 아주 순식간에 청바지는 ‘아메리칸 패션’ 열풍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죠.”

그때 클레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내와 전 호기심이 생겨서 아이들에게 어디서 쇼핑을 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가르쳐준 레트로 숍에 가보곤 깜짝 놀랐죠. 리바이스 같은 여러 유명 브랜드의 구제 바지와 재킷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어요.” 미국 구제품 가게에서 1~2달러만 주면 살 수 있는 청바지와 재킷들이 일본에서는 거의 100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심지어 콜렉터 시장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훨씬 오래된 구제 청바지와 재킷들이 수천 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다.

클레이는 미국으로 돌아와 회사에 다니면서 일본에서 구제 청바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제 청바지 수요가 있었다. 심지어는 실물을 보지도 않고 비싼 값에 구제 청바지를 사겠다는 바이어들도 있었다. 사업 전망이 좋아 보이긴 했지만 당장 돈이 들어가야 했다. 클레이는 오랜 친구인 댈 젬프에게 옷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계속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클레이는 댈과 회사 동료인 존 페닝턴에게 부업으로 구제 옷 사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며 새 옷도 아니고 남이 입던 옷을 그렇게 비싼 값에 살 리가 있겠냐고 말했다.

클레이가 아무리 전망이 좋다고 설명해도 댈과 존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친구의 말이니만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존이 사무실로 리바이스 501을 몇 벌 들고 와서는 한 벌당 가격이 얼마나 나가겠느냐고 물었어요. 전 영국인 바이어에게 팔면 한 벌당 80~100달러를 받을 수 있고 일본인 바이어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이상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죠.” 존은 “뭐야, 이 옷들은 우리 집 뒤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꺼낸 거야!”라고 말했다.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던 건지, 신이 우리에게 기회를 준 건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그 후 10년간 이어진 멋진 파트너십의 시작이었어요.”

흥미진진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주말이면 차를 몰고 옷을 살 만한 구제품 상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차에 낡은 청바지를 하도 꽉꽉 채워 넣어서 차 뒤꽁무니가 질질 끌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주요 시장이었지만 순식간에 한국이나 태국 등 생각지도 않은 나라들로 시장이 확대되었다. 클레이와 친구들은 유럽에서 박람회를 열기도 했고 아시아와 유럽 각지로 날아가 크고 작은 상점들 문을 두드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은 TV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고 전 지역의 언론이 그들의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세계 곳곳의 바이어들로부터 감당 못 할 정도로 주문 전화가 밀려들었다.

물론 모든 일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고 극복해야 할 문제도 많았다. “우리 일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업이 법에 위배되지는 않느냐고 물었어요. 어머니는 6년 동안 비즈니스스쿨에서 배웠던 걸 내던지고 정말로 구제 청바지나 팔 거냐고 물으셨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클레이와 친구들의 행동은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짓이죠. 하지만 우린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돈도 많이 벌었죠.”

▲ 바보 같은 생각에 잠재된 무한한 기회
스팽크스(Spanx) 창립자인 새라 블레이클리도 남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바로 몸에 딱 붙고 발 부분이 없는 팬티스타킹이었다. 양말 산업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킨 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하나로 블레이클리는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5,000달러에 불과하던 통장 잔고는 10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녀의 아이디어 역시 처음에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몇몇 변호사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타진했는데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했죠. 팬티스타킹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도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블레이클리는 그 아이디어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생각이고 채산성이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그녀의 생각은 보상을 받았다. “한 팬티스타킹 공장 사장이 전화를 했어요. 제 ‘미친’ 아이디어에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왜 마음이 변했는지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내 딸아이들은 그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하지 않더군요.” 결국 그 팬티스타킹 공장 사장은 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모두가 어리석다고 여겼던 생각이 이제는 놀라운 아이디어가 된 것이다.

1903년 미시건저축은행의 사장은 헨리 포드의 변호사에게 포드자동차에 투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말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겠지만 자동차는 참신하기만 할 뿐 언젠가는 곧 사라질 겁니다.”

바보짓이 성공을 거둔 사례는 단지 틈새시장이나 전혀 생각도 못 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다. 바보짓의 성공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자동차에서도 패션 트렌드나 음악, 서적에서도 바보 같은 아이디어가 성공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내리는 일상의 소소한 결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영원히 바꾸는 가장 위대한 결정에서도 현명한 바보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 『스튜피드』 중에서
(리치 노튼 외 지음 / 미디어윌 / 296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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