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의 사장이자 나중에 회장이 된 고(故) 가쿠 류자부로는 1987년 기업에 쿄세이(共生, 공생)의 개념을 들여왔다. 쿄세이는 ‘협력의 정신’을 의미하는데, 회사의 성숙도에서 가장 높고 강한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이 평생 동안 진화하고 성숙하듯이 가쿠는 기업도 성숙해지기 위해 진화한다고 믿었다. 가쿠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은 에세이에서 쿄세이의 철학과 자신의 적용 방법을 묘사했다. 쿄세이는 내부 지향적인 것에서 외부 지향적인 것으로 점차 변화하는 다섯 가지 단계를 포함한다. 쿄세이의 길 다섯 단계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유명한 인간의 기본 욕구 5단계와 매우 유사하다.

▲ 1단계는 기본적인 것이다. 무언가 좋은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기 전에 기업은 우선순위에 맞춰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이것은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와 비슷하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 첫 번째 단계가 의미하는 것은 우수한 제품을 발전시키고, 적절한 투자를 하며, 올바른 회사 구조를 만들어가면서 이 모든 것을 건전한 전략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가쿠는 쿄세이의 자아 중심인 1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은 절대 직원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CEO들에게 막대한 보너스를 주기 위해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이윤을 달성하려는” 미국 기업들을 비난했다.

▲ 2단계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인 ‘기본적인 안전과 안정의 욕구’와 비슷하다. 이것은 협력의 정신과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일체감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 경영진과 직원은 모두 자신들이 같은 배를 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가쿠는 고정급을 받는 직원과 시간급을 받는 직원 사이의 차이를 없앴다. 2단계에서 기업은 봉급과 복리후생 정책에서 더 관대해질 수 있다. 캐논은 일본 기업 중에서 주 5일제로 바꾼 첫 번째 기업이다. 모순처럼 보이겠지만,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자 생산성에서 예상치 못했던 효율성이 나타났다. 이 단계에서는 캐논 직원들의 기본적인 안전과 안정의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고와 파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짐으로써 직원들의 정신적인 안전과 안정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2단계에서 기업이 더 인본주의적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로 내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3단계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세 번째 단계인 ‘사랑과 소속의 욕구’와 유사점을 갖는다. 가쿠의 회사 성숙 과정 모델에서 3단계는 기업이 초점을 바깥쪽, 즉 지역사회로 돌리는 시기이다. 가쿠는 ‘지역사회’를 넓게 공급자, 고객 그리고 대중을 포함하여 정의한다. 캐논은 고객의 만족도와 공급자와의 작업을 면밀히 모니터하는데, 그들이 질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캐논은 돈만 기부하는 대신 기술적인 전문 지식도 공헌한다. 예를 들면, 캐논은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눈이 안 보이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품을 발전시키고 배급한다. 캐논이 쿄세이 모델 속에 포함된 협력의 정신을 경쟁사에까지 확장시키는 시기가 바로 이 단계이다. 캐논은 경쟁사와 제휴를 서서히 진행시킨 선구자이다. 협력의 정신인 쿄세이의 초기 수혜자들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휴렛팩커드 그리고 이스트먼 코닥 등이다. 이 기업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캐논의 강력한 경쟁사였으나, 한편으로는 캐논과 수익성이 있는 파트너 관계를 즐겼다. 이는 ‘모순적인 경영’의 전형적인 예이다.

▲ 4단계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네 번째 단계인 ‘자기 존중과 타인의 존중 욕구’와 대략 비슷하다. 기업이 이 단계에 들어가면,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존재감을 갖는다. 이 단계의 기업은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안녕에 더 많이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커다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캐논은 세 가지 종류의 불균형을 바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 무역 불균형(무역 적자로 고생하는 나라에 제조 공정을 더 많이 맡김으로써).
- 수입 불균형(개발도상국에 일자리와 수출 성장을 늘리며, 이윤에 재투자하고,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 환경의 불균형(제품을 재활용하고, 환경 친화적인 기술에 투자함으로써).
캐논은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를 극소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300명으로 구성된 부서를 만들었다. 이 기업의 가장 큰 미국 공장은 고체 쓰레기의 90% 이상을 재판매, 재활용하기 위해 사진 복사기를 재가공한다. 이런 행동을 통해 캐논은 각 지역에서 윈-윈하는 성과를 얻었다.

▲ 5단계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자기실현 욕구’와 비슷하다. 가쿠는 이 단계에 도달한 기업이 거의 없다고 믿는다. 매슬로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자기실현 단계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는 가지만,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가쿠는 캐논이 5단계에 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캐논은 정부가 풀지 못한 문제를 푸는 데 책임을 맡음으로써 이를 증명했다. 예를 들면, 캐논은 정부에 세계적인 불균형 등을 수정하라고 주문한다. 기업과 정부는 오염을 감소시키고, 이익을 받지 못하는 국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무역 장벽을 폐지하는 것과 같은 규제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오늘날 일부 대기업들은 가능한 한 정부 수준의 책임감을 갖기 위해 더 집중하고 있다. 가쿠 류자부로는 다음과 같은 의견으로 글로벌 대기업의 리더들을 환기시켰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회사들이 지구 전체에 있는 막대한 자원을 통제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어마어마한 부를 만들고 소유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손안에 지구의 미래를 쥐고 있다. 정부와 개인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정도의 부와 힘을 공유하지 않는다. …… 만약 회사들이 단지 더 높은 시장 점유율이나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들은 경제적·환경적·사회적인 모든 면에서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갈지 모른다. ……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초를 만들기 위해 결합하는 것은 비즈니스 리더로서 우리의 의무이다.

-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 중에서
(라젠드라 시소디어 외 지음 / 럭스미디어 / 396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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