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위엔 지음/이은주 옮김/한스미디어/426쪽/23,000원)

● 주원장(朱元璋)의 지혁(知革) - 결코 순간적인 득실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대업을 이룬 사람들은 처음 일을 일으키는 것보다 진행 과정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왕성한 투지를 가지는 것이 더 어렵다. 고금의 많은 호걸들 중에는 강 상류의 급류는 치고 올라갔어도 중류에서는 오히려 멈춰서거나 배가 전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점은 대국을 분명하게 판단해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주원장은 강을 건넌 뒤에도 여러 차례 생사를 넘나드는 결전이 있었지만 시종일관 깨어 있는 두뇌로 사람과 정세를 관찰해 대업의 정확한 방향을 견지해나갔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1328～1398)이 나라를 세우기 전 농민운동에 참여하여 농민군의 우두머리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의 최대 강적은 진우량과 장사성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성격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할 때에 상대방의 특징을 역이용했다.

지정 20년(1360) 5월 주원장과 진우량간의 결전의 날이 밝았다. 첫 전투에서 주원장의 부대가 약세를 거듭하며 둘 사이에 평형이 깨지자 진우량의 대군은 동쪽 이남으로 기치를 세워 바로 남경으로 진격했다. 혼란에 빠진 주원장의 부하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자’는 무리와 잠시 후퇴하자는 무리, 그리고 투항하자는 무리까지 제각각이었다. 주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우량은 지금 득의만면해 있겠지. 하지만 성급히 성공을 거두려 했다간 패배하기 십상이야. 위로는 군주를 시해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협하지, 상하 계층은 서로 반목하고 모순은 끊이지 않고 있어. 그러니 전술적으로 적을 깊숙이 유인해 매복시킨 병사들로 요격한다면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겠지!’

이런 판단을 한 주원장은 진우량을 유인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이자 진우량의 오랜 벗인 강무재를 위장 투항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이선장을 비록한 중신들이 모두 주원장을 말렸다. “강무재가 가서 투항을 약속한다면, 진우량의 진격을 좀더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원장이 대답했다. “그것이야 말로 내 의도일세. 지금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 볼 때 진우량은 강적임에 틀림없네. 게다가 우리의 뒤에는 강력한 장사성의 부대까지 버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둘이 합심해 우리를 협공할까 두렵다네. 성질이 급한 진우량은 무턱대고 진격하려 할 테지만 장사성은 우유부단한 성격이지. 만일 시간이 지연되면 진우량은 달아올랐다가 곧 식겠지만 장사성은 오히려 그 반대일 걸세. 그럼 둘의 협조 관계도 곧 삐걱거리고 말겠지. 그러니 진우량을 자극해 빨리 진격토록 하면 이 두 세력이 양분되면서 각자 격퇴하기가 편해지지 않겠나.”

대신들은 주원장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에 감탄했다. 주원장은 사람을 관찰할 때 절대 일정한 기준을 두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적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을 판단했다.

주원장이 진우량을 대파한 후 지정 25년 5월 10일, 장사성의 토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공식 선포 전에 그는 어떤 용병술과 작전을 구사할 것인지 중대 현안들을 놓고 군신들과 난상 토론을 벌였다. 상우춘 장군은 ‘새를 잡기 위해선 먼저 둥지를 뒤엎어야 한다’며 우선 장사성의 근거지인 소주를 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원장은 그와 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장사성은 장사꾼 출신이라 용감하고 남들과의 경쟁을 즐기는 인물이오.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만 의협심도 강한 편이오. 그는 부하 장천기 등과 막연한 관계라 만일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다를 부하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오. 틀림없이 목숨을 내걸고 도와주려 할 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식의 강경 대결은 그 승패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소. 그러니 우선 주위 세력부터 제거하고 장사성의 퇴각로를 차단합시다. 그리고 다시 차근차근 진을 처가며 소주의 외곽까지 접근하는 게 어떻겠소?” 그의 이러한 전략은 주효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원장은 또 다른 적 방국진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간파하고 있었다. “방국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기 짝이 없고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면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놈이오. 지금의 기세로 볼 때 오늘의 출병은 틀림없이 승전보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소. 놈은 뾰족한 수가 없어 기껏해야 바다로나 도망을 치겠지. 그러나 지금 그곳의 백성들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어 우선 조약을 맺어 절대 백성들이 함부로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근거로 주원장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책략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적과 나, 벗 등을 포함한 전체 판국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이 요구된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야가 넓어야 하고, 순간의 이해득실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공에 조급해서는 안 된다.

변화에 밝은 주원장은 우선 아군과 적군의 역량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였고, 백성의 능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 전선’의 실행이 가능했으며 그에 따른 충격도 줄일 수 있었다.

중국 역사상 수많은 농민 봉기가 발발했지만 대부분 토지를 얻는 족족 다시 모두 빼앗겨 승리를 맛볼 기회도 없었다. 농민 봉기의 지도자나 영웅호걸들은 원대한 이상이나 계획 없이 근거지만 세웠다 하면 이에 만족하고 순간의 향락에 눈이 멀어 멀리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반해 주원장은 대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전체를 설계했고 이와 같은 건실한 기반과 확신을 토대로 그는 성공할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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