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지음/삼성경제연구소/166쪽/5,000원)

한국의 "은행나무 11그루"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다행스럽게 사업이 잘 되어 얼마 전부터 중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공장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외국인 투자유치에 너무 적극적이라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불과 4개월만에 700평 규모의 공장 확장을 거뜬히 완료했다. 사업허가와 건설공사 등이 거침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도에 짓는 700평 규모의 공장은 사정이 딴판이었다. 규모는 비슷했지만, 허가단계에서부터 건축심의와 환경규제에 이르기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조업은 요원하기만 하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은행나무 11그루"때문에 구청과 씨름을 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웬 은행나무 11그루가 그렇게 말썽을 피우는 것일까? 구청 측이 공장을 세우되, 원래 부지에 있던 11그루의 은행나무는 반드시 보전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나무를 좋아하는 사장은 어차피 공장의 조경을 위해 더 좋은 나무를 심을 계획인데, 반드시 그 은행나무 11그루만을 보전하라니 답답하기만 했다. 여러 차례 사정해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사장은 아예 모든 공장을 중국에서 시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됐다. 과연 그 은행나무 11그루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그런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만 환경이 제대로 보전되는 것일까.

은행나무가 아니더라도 기업 규제에 관한 일화는 헤아릴 수 없다.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판매하려면 교육인적자원부,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때로는 산업자원부에도 들러야 한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규제하고, 특정 업종이라는 이유로 또 규제하며,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도 많다. 혹시 우리나라는 지금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중이 아닐까.

프랑스의 "조세징수원"
17세기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거의 같은 상황이었는데 왜 산업혁명은 프랑스보다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부의 탄생(the Birth of Plenty)』의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William Bernstein)은 프랑스의 "불완전한 재산권" 제도가 산업혁명 시대에 1등 국가로 비약하는 길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불완전한 재산권의 상징인가?

17세기 초 프랑스의 부모들은 자식이 "조세징수원"이 되기를 열망했다. 당시 프랑스 세입의 주된 원천은 타이유(taille), 즉 토지와 건물에 대한 세금이었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과세로부터 면제되었고, 세금은 농민과 소규모 사업자들에게만 부과되었다. 당연히 귀족이 되거나 성직을 취득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큰 이득이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귀족으로 편입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심한 조세부담 때문에 농민들은 토지를 매각하기 시작했고, 이 토지들은 귀족 지주들에게 축적되어갔다. 지주들은 중앙정부의 보호 아래 관리인을 파견해 이미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농민과 그 자손들로부터 장원세와 물납소작료를 거두어들였다.

루이 14세가 죽었을 때, 프랑스는 거의 봉건제적인 상태로 후퇴했고 왕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복잡한 세금을 거두어들이기가 어려워지자 정부를 대신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그 중의 일부를 수수료로 챙기는 민간 사업자인 "조세징수원" 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의 재정을 민간 조세징수원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조세징수원의 재량권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서서히, 그러나 본격적으로 프랑스의 경제에 거추장스러운 부담이 되었고, 결국은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자손들이 상인이 되거나 제조업과 금융업을 확장하여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식들이 조세징수원이 되길 원했다니 어떤 결과를 가져왔겠는가. 정부의 잘못된 재산권 제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의 "붉은 깃발 법"
정부의 잘못된 규제로 인한 피해는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최첨단의 기계가 영국에서 먼저 개발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 사례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다. 그러나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크게 융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럽에서는 독일 등에서 먼저 발달했다.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대표적인 요인은 "잘못된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잘못된 규제는 바로 1865년 선포된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이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본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이 성은(聖恩)을 내린 것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1) 1대의 자동차에는 세 사람의 운전수가 필요하고, 그 중 한 사람은 붉은 깃발(낮)이나 붉은 등(밤)을 갖고 55m앞을 마차로 달리면서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
(2)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한다.
(3) 밤에는 촛불이나 가스불을 달고 운행해야 한다.
(4) 시 경계를 지날 때는 도로세를 내야 한다.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6.4km로 규제하면, 누가 영국 땅에서 자동차를 타고, 좋은 자동차를 개발하겠는가. 결국 이 법은 1896년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달리지 못하던 자동차가 이미 프랑스와 독일에서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며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사양산업인 마차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결국은 마차와 자동차를 모두 잃게 한 셈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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