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 돈 슐츠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쓴 『광고전략 에센스』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크리에이션(Creation)이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고안하고 개발하고 혹은 드러내는 것-새로운 아이디어, 새롭고 독특한 개념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크리에이티브(Creative)하다는 것은 ‘차별적’이거나 또는 ‘독특하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크리에이션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것은 차별화하거나 혹은 독특하게 변형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뉴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문화는 크리에이션은 잘 못해도 참 크리에이티브합니다. 미국 대중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문화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해도 아이디어를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부족해도, 변형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변형이 바로 뉴욕 대중문화의 연쇄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미국에서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신데렐라’ 시리즈 입니다. 음악과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게 어른들마저 몰입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대단하다 싶은 것은 한 줄이면 끝날 빤한 스토리를 가지고 1·2·3탄까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착한 신데렐라는 계모에게 갖은 구박을 받지만 요정할머니의 유리구두 덕분에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월트디즈니가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을 처음 내놓은 게 1950년입니다. 1탄인 셈이죠. 여기까지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신데렐라는 궁중생활에 잘 적응해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디즈니는 2005년 <신데렐라2>를 개봉합니다.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한 신데렐라는 용감하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이미지 변신을 합니다. 무겁고 격식만 찾는 궁중 분위기에 질려버린 신데렐라는 궁중의 예절과 예법을 하나하나 뜯어고칩니다. 화려하고 엄격하기만 한 궁전을 서민적인 스타일로 바꿔놓지요. 물론 이번에도 역시 행복하게 잘 삽니다. 심통쟁이 언니 아나스타샤는 차츰 착해지면서 동네 빵집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여기까지가 2탄입니다.

그렇다면 요술지팡이가 엉뚱하게 신데렐라가 아니라 계모의 딸인 아나스타샤의 발에 유리구두가 맞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디즈니는 2007년에 <신데렐라3>를 개봉합니다. 요술지팡이를 손에 넣은 계모는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리고 신데렐라 대신 아나스타샤를 왕자와 결혼시킵니다. 결론은 디즈니답게 해피엔딩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이야기를 변형해 3탄까지 만든 디즈니의 신데렐라 시리즈에 거창하게 ‘창조’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누가 이걸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이번에는 디즈니의 숙적인 드림웍스를 볼까요. 1994년에 생긴 드림웍스는 디즈니를 밟고 성장합니다. 지금의 드림웍스가 있기까지는 디즈니의 식상한 동화 속 주인공을 하나하나 불러내 비꼬고 우스운 꼴로 만들어 관객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 덕이 큽니다. 디즈니의 희한한 이데올로기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도 속이 시원하지요. 예를 들어 ‘여자는 착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 ‘왕자와 공주는 백인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등의 이데올로기 말입니다.

그런데 드림웍스 불후의 명작인 <슈렉>을 한번 보십시오. 주인공부터 멋진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징그러운 느낌마저 드는 피오나 공주와 슈렉입니다. 피오나 공주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와는 다릅니다. 남편 슈렉을 위해서는 자기 한 몸 아끼지 않고 맞서 싸우는 용감무쌍한 여자입니다. 압권은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전 세계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디즈니 캐릭터들을 불러내 멍청한 존재로 그리는 장면입니다.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서로 때리고 싸우기도 합니다. 속이 다 후련하지요.

디즈니가 전세(戰勢)를 돌려놓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 바로 2007년 11월 말 개봉한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입니다. 한마디로 현대화한 디즈니 스토리입니다.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게 유일한 꿈이었던 동화세계의 여주인공이 드디어 왕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결혼식 전날 마녀의 방해로 현실세계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녀가 떨어진 곳은 삭막한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맨홀. 이곳에서 그녀는 한 이혼전문 변호사를 만나는데, 그는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오래 살았답니다’ 하는 디즈니 불굴의 모토는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현실지향형 인간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순수한 여자 때문에 서서히 변하고, 동화 속 여주인공도 현실세계를 차츰 알아갑니다.

디즈니와 드림웍스는 이런 식으로 서로 치고받으며 세계의 돈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가 밥을 먹여준다고 외쳐도, 새로운 아이템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바꾸고 뒤집고 비틀어 어필을 하면 그게 바로 크리에이티브한 것입니다. 문제는 창조가 아니고 재창조입니다.

- 『딜리셔스 샌드위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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