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소재가 수만 개의 제품으로 세분화되는 시장, 그 시장을 찾아내 선점하고 리드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경영자들의 꿈일 것이다. 공업용 도자기를 만드는 작은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무라타제작소는 바로 그런 꿈을 현실화한 기업이다. 무라타제작소는 우리가 보통 ‘애자’라고 부르는, 아직도 전봇대에 절연체로 흔히 사용되는 팔뚝만한 도자기 부품을 만드는 가족기업이었다. 그런데 1944년 창업주 무라타 아키라는 도자기, 즉 세라믹이 전자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도자기 생산업체에서 전자부품업체로 변신을 시도했다. 이것이 바로 무라타제작소의 시작이다.

무라타제작소의 주력 제품은 적층 세라믹 콘덴서, 즉 MLCC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화학소재를 결합해 만든 세라믹 부품이다. MLCC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TV 등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으로서, 휴대폰에는 200개, 컴퓨터에는 500개, TV에는 1,000개 이상이 필요하다. 크게는 손톱만한 것부터 작게는 모래알보다 작은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게다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나에 1원이 안 되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비싼 것은 소주 한 잔 분량에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무라타제작소는 MLCC를 비롯한 세라믹 전자부품 부문에서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유지해왔다. 한 분야에서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수만 개 이상의 제품이 존재할 만큼 세분화된 시장을 독식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결과다. 당연히 경영성과도 훌륭하다. 금융위기 이전 지난 10년 간 연평균 15% 이상의 고속성장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도 2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이 막강한 무라타제작소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무라타제작소의 첫 번째 성공비결은 치열한 내부 경쟁 체제에 있다. 2010년, 창업 66년을 맞은 무라타제작소의 업무 분위기는 어떨까? 무라타제작소를 방문한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벤처나 대학생 벤처보다 더 치열한 분위기에 놀란다. 회사 자체가 수천 개의 벤처기업이 연합된 듯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무라타제작소는 3,000개가 넘는 사업부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업부서끼리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를 사고판다. 예를 들어, 영업부서는 필요한 부품을 제조부서에서 구입해 고객에게 판매하고 이윤을 창출한다. 그리고 창출한 이윤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인센티브가 결정된다. 따라서 영업부서들은 가능한 한 저렴한 가격에 좋은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경쟁력이 없는 제조부서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결국 회사 내에서부터 이미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자금관리도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별도의 사내은행에서 각 사업부서에 자금을 빌려주고 꼬박꼬박 이자를 챙긴다. 따라서 사업부서에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불필요한 이자가 발생할수록 부서의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공비결은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데 있다. MLCC는 여러 화학소재가 결합한 제품이니만큼 예민하기도 하고, 원재료와 제조하는 방법에 따라 매우 다양한 제품군으로 나뉜다. 따라서 고객이 원하는 전기적 특성의 부품을 만들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무라타제작소는 이런 과정, 즉 지금까지 생산 실험의 모든 ‘실패’를 꼼꼼히 기록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성공 사례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반해, 무라타제작소는 실패사례도 성공 사례와 똑같이 대접한다. 이런 과정이 오래 축적되다 보니 결국 어느 경쟁사도 따라오기 힘든, 소재와 제조 방법에 관한 독보적이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고객이 제품 카탈로그에 없는 까다로운 부품을 요구해와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한 상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무라타제작소를 보고 “무라타제작소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기업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세 번째 성공비결은 기민한 위기 대응력에 있다. 아무리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라타제작소라 해도 세계시장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급락하고 엔고 현상까지 겹치자 무라타제작소는 “100억 엔 영업적자가 예상되므로 1,000억 엔의 비용 절감안을 실행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대략 우리 돈으로 1,370억 원의 손실에 대해 1조 3,700억 원의 비용을 줄여 사실상 흑자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발표였다. 과연 이런 목표가 실현 가능할까? 무라타제작소는 우선 일본 내 센다이공장을 2년간 폐쇄했다. 센다이공장은 지진이 발생할 때를 대비한 예비 생산시설이다. 또 설비투자 부문도 현금흐름을 유지하고 감가상각비를 절감하려는 목적에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인 450억 엔을 투입했다. 무엇보다 평생고용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관행을 깨고 3,000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했다. 위기에 대응한 이러한 조치들은 사실상 ‘비효율을 불황에 다 털고 가겠다’는 무라타제작소의 강력한 경영 의지를 보여준다. 물론 비용 절감에 집중하는 가운데도 2009년 신년사에서 무라타 야스타카 사장이 ‘고객만족’을 경영방침으로 공표할 만큼 고객관리 부분은 철두철미하게 관리했다.

부서 간 선의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실패까지도 자산화하며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무라타제작소의 저력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늘 20대 청년과 같은 열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는 무라타제작소는 대기업병에 전전긍긍하는 여러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 『나는 고집한다. 고로 존재한다』 중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엮음 / 삼성경제연구소 / 256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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