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평 지음/소나무/398쪽/18,000원)


가부키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전통 연극이다. 가부키를 처음 보았을 때 내게는 가부키의 현란한 무대와 의상도 관심거리였지만, 일본인이 이런 전통 연극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도 매우 궁금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연극을 볼 때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식을 먹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금하지만 일본의 가부키 극장은 사교의 공간이다. 가부키를 공연하는 극장 입구에는 도시락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들은 극장에 먹거리를 사 가지고 들어가 먹고 마시면서 편하게 구경을 한다.

사람들은 가부키의 줄거리를 대개 알기 때문에 극에 몰두하지 않고 친구나 손님과 함께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극을 본다. 2층의 특실은 다다미방으로, 다른 방들과 격리되어 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자유공간이라서 거기서 극을 보건 술을 마시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전통 문화의 주요 관객은 대개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가부키를 구경하러 올 때 손자나 손녀를 데리고 온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가부키의 소리와 분위기를 익힌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그곳을 찾는다.

일본인 친구에게 물었다. "가부키를 무슨 재미로 보나?" "가부키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양식미라네. 가부키에서는 양식이 내용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지. 가부키가 외국인에게 재미없다는 것은 바로 그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가부키가 양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온나가타"라는 존재에서 온 것이다. 여자 배우를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생겨난 온나가타는 남자를 여자처럼 보이게 하려는 연극적 변형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온나가타는 무대에서 남자배우보다 앞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이것은 원근법을 이용해 온나가타를 조금이라도 작게 보이려는 것이다. 그리고 소맷부리 밖으로 손목을 내밀지 않는다든지, 무릎을 떼지 않는 것도 여자처럼 보이기 위한 기교이다.

일본 여성의 안짱다리 걸음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나카무라 토미주로라는 유명한 온나가타가 있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이 안짱다리 걸음걸이를 했을 때 그 자태가 너무나 여자답고 나긋나긋해서 일반 가정의 부인들도 이것을 본뜨게 된 것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더구나 음악적으로는 아주 멀다. 내가 일본 전통음악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선입관은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은 우리 나라의 이웃이기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의 세월이 20년 넘게 흐르고 나니, 이제는 일본 음악이 조금은 들린다. 물론 그래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 솔직한 심정을 어떤 일본 음악가에게 털어놓았더니, 그는 껄껄 웃으면서 자기네들도 일본 전통음악을 그런 기분으로 대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판소리나 사물놀이, 가야금 산조 등과 같은 즉흥 음악이 많은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선생의 음악을 충실히 전승해야 한다. 출중한 제자가 있어 자기 마음대로 하면 그 사람은 유파에서 쫓겨난다. 그는 자기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야 한다. 전통 음악계에서 이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정확한 것을 좋아해서 이처럼 즉흥 연주 같은 것은 불확실한 모험은 하지 않는다. 그들이 즉흥 연주를 기피하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음악성이 부족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정확한 연주를 즐기는 것이다.

-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중에서


* 20년 동안 실크로드를 오가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들과 그들의 음악을 기록한 현장 보고서.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를 비롯하여 인도의 비나, 몽골의 마두금 등 다양한 민족과 그들의 음악, 악기를 소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각 나라의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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