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정 지음/열매출판사/238쪽/8,500원)

수년 전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이 연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키 리조트에 모였다. 출신 지역과 신분, 나이 등이 모두 달랐지만 참석자들은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다음 날은 그들 가운데 20여 명이 숙소에서 나와 마을 변두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산중턱에 있는 빅토리아풍의 식당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지친 여행자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며칠이 지나자 참석자들은 친밀함과 아울러 동료 의식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날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였다. 이제 겨우 20대인 마이크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대화는 다른 날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의사들이 다행히 치료가 가능한 암이라고 했다면서도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중년 부부인 톰과 세릴은 마이크에게 동정을 표하면서 그들의 아들은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할 형편이며, 그 충격으로 온 가족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최근에 교통 사고로 남편을 먼저 보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자는 최근 직장에서 해고되어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각자의 고통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그날 밤 분위기는 침통하게 변해 갔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 폭식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 인간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 고난에 면역이 되어 내성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대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미스터 헤이즈라고만 알려진 노신사가 앞으로 나왔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지만 점잖은 그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까지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간간이 미소만 지을 뿐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 노신사에게 쏠렸다.

미스터 헤이즈는 사람들에게 펜과 종이를 준비하라고 권한 뒤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한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각자 종이에 자신이 당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나 고민거리를 하나씩 적어보는 것입니다. 단 여러분의 이름은 쓰지 마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그 고민의 주인공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따라 사람들은 사색에 잠겨 각자의 고민을 종이에 썼다. 미스터 헤이즈는 그 종이를 접어 벽난로 앞에 놓여 있던 바구니에 넣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하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의 말에 따랐다. 미스터 헤이즈는 그 바구니를 흔들더니 머리 위에 올리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한 사람 당 하나씩 종이를 집게 했다. 사람들이 종이를 집자 벽난로 앞으로 돌아온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자, 여러분. 이제 각자가 뽑은 종이를 펼쳐 내용을 읽어보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최대한 정직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 다음 미스터 헤이즈는 자기 옆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자, 당신의 고민과 그 종이에 적힌 고민을 바꿀 의향이 있습니까?" 그러자 여자는 싫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다시 다른 남자에게 똑같이 물었지만 그 남자도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놀랍게도 '예'라고 대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미스터 헤이즈는 벽난로 옆 안락 의자에 앉아 가볍게 의자를 흔들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도 자신의 고민을 다른 사람의 고민과 바꾸겠다는 분은 한 분도 없군요. 보십시오! 여러분은 밤잠을 설칠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남의 고민과 비교해볼 때 자신의 고민은 해결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감사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그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나 고민거리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없으면 해결책도 찾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지요. 해결책을 찾지 않고서는 더 강해지고 더 발전할 수도 없으며, 깊은 이해심을 가지기도 힘듭니다. 물론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고민거리나 문제는 비슷한 문제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저절로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부와 행복과 평온에 이르려면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세상이나 자신의 문젯거리에 정면으로 도전한답시고 오히려 끌려 다니면서 자신의 생각과 삶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하지만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고민과 문제점을 뒤로 한 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런 능력이, 여러분이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고난 치고 그에 상응하는 축복을 감추고 있지 않은 고난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마음의 문을 열고 똑바로 고난을 직시하십시오. 고난 속에 숨겨져 있는 축복을 찾기까지 오랫동안 고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축복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진리의 비밀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에게 닥치는 고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많은 축복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요. 의심이 들면 한 번 시험해 보세요. 그리고 결과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미스터 헤이즈의 진지한 이야기에 도취되어 멍하니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확신에 찬 말이 모든 불안과 걱정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말을 마친 그는 먼저 실례하겠다면서 자리를 떴고, 남은 사람들은 미스터 헤이즈의 말에 대해 토론을 벌이면서 하얗게 밤을 세웠다. 특히 그들은 어떻게 하면 고난을 축복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암 진단을 받은 청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일깨우겠다고 했고, 아들이 신장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던 중년 부부는 장기기증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남편을 잃은 부인은 남편이 마을에서 하던 자원봉사를 자신이 계속 이어서 하겠다고 했으며, 직장을 잃은 남자는 이번 기회에 계속 벼르고 벼르던 책 쓰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문제에 갇혀 있기보다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남을 돕기 위한 기회로 삼아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뒤로도 비슷한 회의에 자주 참석했으며, 미스터 헤이즈를 기억하며 토론을 벌이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뒤로 미스터 헤이즈를 본 사람이 전혀 없으며,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 리 심슨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운 보석 같은 이야기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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