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예일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뉴욕 타임즈》 인물난의 기사를 쓰기 위해, 나를 인터뷰하러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프레드라고 소개했다. 그는 마치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의 쇠창살 속에 갇혀 있는 죄수 같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꼈다. 그 후로 몇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삶을 나누는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고, 각자가 겪은 배척과 이별의 아픔을 공유하며 편지로, 글로 마음을 전했다.

프레드,
자네가 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정말 꼭 기억하길 바라는 한마디가 있네. 지난 한 해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 특별한 단어가 서서히 떠올랐지. 바로 ‘사랑받는 자’라는 단어였네. 난 그 단어가 나뿐 아니라 자네와 자네 친구들을 위해 주어진 단어라고 확신하고 있네. 성경 속 예수가 세례받는 장면에서 이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6-17).

수년 동안 이 말씀을 읽고 강의도 했지만, 이 말씀이 내가 속해 있는 종교 전통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자네와 긴 대화를 나눈 이후였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는 이 말은 모든 인류를 향한 가장 깊은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말일세. 프레드, 나의 유일한 소망은 자네의 존재 구석구석에서 이 말씀이 울려 퍼지게 되는 것이네.

그렇지. 그 목소리가 있었네. 위로부터, 내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부드럽게 속삭이기도 하고 크게 선포하기도 하는 목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너는 비열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걸세.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는 너무 크고 끈질겨서 그대로 믿어버리기가 쉽지. 그것이 위험한 함정이네. 바로 자기 거부의 함정! 우리가 가치 없고 사랑스럽지 못하다는 목소리를 믿게 될 때, 성공, 명예, 권력은 쉽게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오지. 나는 내가 이 유혹에 얼마나 빨리 넘어가는지를 보면서 계속 놀라고 있네.

어찌 보면 교만이라는 것도 자기 거부라는 동전의 다른 면이 아니겠는가? 교만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기 싫어서 자신을 더 높은 자리에 앉히려는 것이 아니던가? 간혹 자기 거부는 단순히 불안한 사람의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보이기도 하지. 그러나 신경질이란, 흔히 훨씬 더 깊은 내면의 어두운 면이 정신적으로 표현된 것이네. 그러므로 영적인 삶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거부일세. 그것이 우리를 ‘사랑받는 자’로 부르신 거룩한 목소리를 부인하게 하기 때문이지.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핵심 진리를 표현한 것이네.

자네를 사랑받는 자로 부르신 그 목소리에 아주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순간마다, 자네는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내면의 욕망을 발견하게 될 걸세. 그것은 사막에서 샘을 발견한 것과도 같지. 난 이제 막 건조한 사막을 뚫고 솟아나는 작은 물줄기를 발견했다네. 나는 계속 파 들어가는 작업을 하게 되겠지. 그 작은 물줄기는 사막 같은 내 삶 아래 깊숙이 숨어 있는 거대한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니까 말일세.

우리가 항상 온전한 사랑을 발견하려 애쓰고, 완전한 진리를 갈망한다는 사실은, 이미 사랑과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맛보았다는 뜻이네.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아름다움이나 사랑, 진리 같은 것이 이미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그건 마치 모든 인간이 내면 깊은 곳에, 잃어버렸던 낙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게야.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이 숨겨져 있네.

‘사랑받는 자’로서 이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상적인 실존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어 가는 것’이네. 사랑받는 자가 되어 간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는 그 진리를 구현하는 것이네. 그것은 그 진리를 삶으로 드러내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네. 그러나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흐르는 조류가 표면의 파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결국 우리의 생명력은 시들게 되고, 바쁜 와중이라도 활기 없고 따분해지고 말 걸세.

우리는 잠시 세상에 보냄받은 자들이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에서 겪는 기쁨과 아픔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말일세.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네, 그렇습니다”를 새긴 채 우리를 보내신 분께 돌아가게 되네. 우리를 사랑받는 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성령은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연합하게 하는 영이시네.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분별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연합, 치유, 회복, 화해의 순간들을 감지하는 것이네. 성령이 역사하는 곳마다, 분열은 사라지고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연합된 모습이 나타난다네. 따라서 기쁨과 슬픔은 영적인 온전함에 이르는 길의 한 부분이 되지. 이러한 시각을 가질 때 실패나 죽음은 더 이상 패배가 되지 않는다네. 나를 사랑받는 자로 부르시는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네./font>

-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