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도원장을 만나러 갈 때만 하더라도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마음을 과연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질서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이곳 수도원에 들어와 지난 몇 주 동안, 가장 거룩해 보이는 행동들조차도 허영심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음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초대 교부들의 신령한 글들에 쏟는 치열한 관심도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깨우침에 쓰이는 관념과 통찰로 변하기 쉽다. 그렇다. 심지어 하나님마저 개인적인 열정을 추구하는 대상으로 변질시키고, 이를 교묘하게 조작해서 주위의 인정을 받으며 일신의 영달을 좇고 싶은 강렬한 유혹이 존재한다.

원장은 내 우려를 듣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다’라는 명제를 화두로 여기십시오. 그 생각을 묵상의 뼈대로 삼아서, 단지 생각을 넘어 살아 있는 실체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선택해 그 안에 머물기로 하셨습니다. 그대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거죠. 영성생활이란 하나님이 머무실 여지를 남겨두고 그분의 영광이 저절로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묵상하면서 스스로 물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있는 곳에 주의 영광이 머물러 있지 않다면, 그밖에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는 분명 통찰이나 관념, 사물을 보는 관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묵상의 주제일지언정 연구할 과제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매우 친밀하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세상만물이 모두 달라지며 인생에 결정적인 방향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대단히 진실해 보이던, 심지어 하나님보다도 더 현실적인 것 같던 정욕들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 실상을 드러내며 사라져 버릴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따르면,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운,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음받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며 가장 깊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나누다 보니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되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직접 조개껍데기처럼 단단한 나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오셔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분의 진면목을 드러내시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정욕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시길 원하는 거군요. 하지만 그런 정욕이 눈을 가려서 지금 임재하신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잘 살펴보면 당신 안에 정욕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순전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십시오. 천하에 거칠 게 없어 보이던 정욕의 권세들이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걸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그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마지막에 나눈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승리하고 말고를 떠나서 전투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행복해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구체적이고, 위험스러우며, 몹시 잔인할 것입니다. 투우장에서 성난 황소와 벌이는 싸움과 매한가지지요. 하지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는 승리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참다운 승리를 맛본 이들은 백이면 백, 대단히 겸손하게 마련이지요. 승리의 다른 얼굴을 보았고 스스로 떠벌리고 다닐 만한 게 거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어둠의 세력과 빛의 권세는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서 곧잘 허영이 그 틈을 파고든다. 수도원은 그 최전선이다. 하루하루 벌어지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상사 가운데서도 전투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깥세상에서 자신을 찾는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우편함 근처를 서성이거나, 수도원장이나 다른 수도사들이 남다른 관심과 친절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지극히 작은 일이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르면 전쟁터를 더 잘 관찰할 수 있다.

바야흐로 평생 여기 있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고 절실해지면 그때가 바로 떠나야 할 시점이다. 죽는 날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낼 내면의 준비가 끝나는 순간, 세상에 나가 열린 마음을 품고 창의적으로 생활하며 더 이상 주위의 인정이나 애정에 기대지 않을 태세가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도로테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웃에게서 애정을 구하지 말라. 주위에서 따듯한 관심을 얻으려고 애쓰는 이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리어 스스로 이웃에게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안식을 제공하라. 그러면 이웃들도 너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제네시 일기』 중에서
(헨리 나우웬 지음 / 포이에마 / 312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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