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물기술을 가르치고자 보츠와나에 온 지 4년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재정악화로 한국인 교사들이 하나둘씩 학교를 떠나고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래가 점점 막막해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한국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가방을 싸고 무작정 떠났지요. 수중에 항공료가 남아 있지 않아 한국이 아닌 또 다른 아프리카로.

그러다 마침내 그곳에 닿았습니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남쪽 국경선에 있는 곳. 수킬로미터 밖에서도 어마어마한 소리와 울림, 물보라로 존재의 위용을 자랑하던 빅토리아 폭포에 말입니다. 나이아가라, 이과수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불리지만, 워낙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아무나 볼 수 없다는 꿈의 폭포, ‘빅폴’.

맞은편 벼랑에서 빅폴을 마주한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제 상상력 안에 있는 모든 프레임을 뛰어넘는 웅장함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깨우는, 거대한 충격 그 자체였거든요. 특히 메마른 사막에서 온 제게 매 순간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는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폭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지난 4년간 꾹 참고 살았을 거야!”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눈앞에 빅토리아 폭포가 어른거렸습니다. 눈을 떠도 보이고 감아도 보이고…. 그리고 알게 됐지요. 인생이 언제나 사막 같은 시간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구나. 타박타박 걷다 보면 언젠가 빅토리아 폭포 같은 웅장한 세월을 만나겠구나.

다시 되돌아간 학교에는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곳곳에 지난 4년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직접 벽돌을 한 장 한 장 나르며 지은 식당이 있고, 아이들이 아침마다 노래를 부르던 수돗가가 있었습니다. 매일 정성스레 가꾸던 정원 한쪽의 나무들도 어제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 편물기술을 배워서 베테랑이 되는 데도 꼬박 10년이 걸렸는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하러 왔다면 최소한 10년은 있어 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혼자라는 생각을 하니 또다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인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기도는 침묵이 되고 이내 눈물이 되었습니다. 모래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때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신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제 내면의 목소리였는지…. 어쩌면 사막이 건넨 말인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소리가 제 심장에 닿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나와 같이 살자.’

그 목소리는 제게 학교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있자고만 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저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랬구나. 제 안의 하나님은 그걸 원하고 계셨구나. 그제야 사람들이 떠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불쌍한 이들을 도우러 갔지 함께 살려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산의 정상 위에 깃발을 꽂기 위해 매일같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척박한 현실 속에서, 길도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 속에서 지쳐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 그냥 함께 살자. 그거면 충분하다. 위대한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여기서 사는 것이야 못 하겠나.’

만약 제가 무엇을 하겠다고 보츠와나에 남았다면, 저는 아마 얼마 못 가서 떠났을 것입니다. 저 자신을 근본적으로 설득하는 힘은 스스로에게서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새로운 길을 발견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학교 이사회로부터 연락이 왔고, 마침내 학교 문을 닫은 지 5개월 만에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겨우 스물여덟 살에 학교의 최고 책임자가 됐습니다. 마음이 뿌리를 내리자 황량하기만 했던 벌판마저 달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뒤로 제게는 ‘빅폴’ 같은 날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행복한 순간, 깨달음의 순간, 성장의 순간…. 물론,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폭포가 아무리 멋있다고 해도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겠지요.

- 『당신도 언젠가는 빅폴을 만날거야』 중에서
(김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72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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