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콩고 국경의 밀림으로 의료봉사 여행을 갔던 때의 일이다. 밀림에는 피그미족이 군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로 지은 교회 안을 피그미 아이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들이 묵을 숙소는 피그미 형제들이 우리를 위해 직접 만든 바나나 맨션이었다. 그들은 바나나 잎으로 정성스럽게 집을 만들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다음 날 우리는 피그미족의 공동체를 방문해 진료를 시작했다. 욕창을 심하게 앓는 한 피그미 아이에게 유독 눈이 갔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발가락은 이미 다 썩어서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옷과 신발 없이 밀림에서 살아야 하는 삶이 가져온 고통스런 결과였다. 생명을 건지려면 우선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했다.

썩어가는 부분을 소독하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주사를 놓고 고름을 짜냈다. 아이가 몸부림을 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자지러지게 울어 대는 아이를 붙잡은 채 큰 눈을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한참 만에 진료가 끝났는데, 그 아버지는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아이를 간호사에게서 낚아채 품에 안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더는 아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 또한 육체의 고통 속에 신음하던 때가 있었다. 아프리카 사역을 결심하고 다시 밀림으로 들어가, 피그미족의 집에서 함께 자고 그들과 함께 먹는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기침과 열이 심해져 말라리아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담당의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큰 병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튿날 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해봤더니 바이러스 때문에 오른쪽 폐가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었다. 밀림을 여행하면서 먹은 피그미족의 음식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주치의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른쪽 폐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고통의 늪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인생이 후회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고 싶었다. 어느 이른 새벽, 나는 병원의 19층 복도 창문 위에 서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나 소망이 더는 없는 듯했다. 글쎄, 나도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반응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 육체뿐만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수술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의(義)를 드러내며 분투하고 뛰어온 이중적인 내 모습을 보게 된 순간, 오래 전 의료봉사 때 아파하는 아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피그미 아버지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졌다. 그때 병상에서 읽은 책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을 넓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 때까지 내 마음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듬는 것이다.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시도록 내 삶을 다듬는 것이다. 내 안에 깊이 임재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겸 선지자를 꼽으라면 대부분 모세를 이야기할 것이다. 모세는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능력과 권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왔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모세는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너를 안다”(출애굽기 33: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의 믿음과 장점뿐 아니라 연약함과 단점까지 하나하나 전부 파악하고 계시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각종 연단을 통해 그를 단련하셨고, 모세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이름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예레미아 12:5)

하나님은 우리를, 말과 경주하며 대홍수 속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사람으로 세워가기를 원하신다. 얼마나 연약하고 망가졌는지 다 아시면서도 우리의 실낱같은 가능성을 믿어 주신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든 희망의 씨앗을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 당신을 믿고 당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반드시 치유 받고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힘들게 하는 다른 사람 역시 그런 존재임을 믿어 줘야 한다.

- 『치유를 연습하는 하루』 중에서
(김월림 지음 / 예수전도단 / 248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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