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에서 목회하던 시절 ‘소문실명제’를 성도들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전해 들은 소식을 전할 때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말을 함께 반드시 전하자는 것이었다. 회의할 때 막연하게 “누군가가 그렇다더라”라고 말하지 않고 “누가 말했다”라고 정확하게 전하자는 거였다. 말하는 사람의 이름이 함께 전해지면 소문의 위력은 꼬리를 감출 것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소문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소문으로 인한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한 제안이었다.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님이신 고 옥한흠 목사님이 식사를 사 주시면서 값진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있다.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면 무조건 믿지 말라”라는 말씀이었다. 귀한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목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담임목사로서 여러 가지 소문을 곳곳에서 듣게 된다. “누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라는 소문을 듣고 당사자를 만나 보면 소문과 다른 사람일 때가 많다. 소문만 들었을 때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다른 사람들이 심어 놓은 바이러스에 함께 감염되어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기가 어렵다.

한 사회에서 보이지 않으나 가장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은 소문이다. 좋은 소문이 시작되면 실제보다 더 좋게 부풀려져 번져 나가고, 좋지 않은 소문이 시작되면 실제보다 더 나쁘게 부풀려져 퍼져 나간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서로 대면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이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첨단 마우스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소문에 휩싸여 결정을 내릴 때 그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든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때 가장 먼저 공격했던 영역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타락의 과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탄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소문처럼 흘려듣도록 만든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진리를 “혹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 진리를 소문의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도 확신이 없는 이유는 진리의 말씀을 소문 정도로 듣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치명적 약점은 진리를 하나의 의견 혹은 소문의 아류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묵상이 부족한 설교자의 설교는 진리가 진리 되도록 그 권위와 무게를 전달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의견으로 대체됨으로써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소문으로 말씀의 격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성도들의 말씀 묵상 또한 말씀의 진리성이 내면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개개인의 사상이나 잡념 속에 파묻혀 버려 하나의 소문으로 머릿속을 맴돌다 떠나 버리고 말 수 있다.

반면 사람들은 들려오는 소문은 진리처럼 믿고 싶어 한다. “그럴지도 몰라”라는 말을 듣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다더라” 혹은 “어쩌면 그럴 수가 있지?”라고 전할 때 그 소문은 어느새 사실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르고 소문의 근원지인 그 사람이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나아가 그가 주장하는 말과 추진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만일 그 말이 사실과 다르며 중간에 말을 전달한 사람이 왜곡한 것이라면?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의 말을 교묘히 바꾸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아주 악한 습관을 가진 부류가 있다. 사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다. 소문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수록 버전이 다양해진다. 이러한 소문을 나누고 전파하는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소문과 진리를 분별해 소문이 진리처럼 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삶의 변화는 소문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난다. 관계의 회복도 자신이 들은 소문을 내려놓고 진리를 나눌 때 얻을 수 있다. 함께 모이면 소문이 아니라 진리를 먼저 나누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소식이 진리에 근거한 사실인지, 아니면 부정확한 소문인지 분별하고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소문에 굶주린 마음을 진리에 굶주린 마음으로 바꾸면 놀라운 능력이 일어난다. 진리를 포기하면 소문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러나 진리를 붙잡으면 소문은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리를 진리 되게 하고, 소문을 소문으로 그치게 하는 공동체와 사회로 바꿔 나가야 한다.

- 『생각을 생각한다』 중에서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193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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