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앞에 앉아 텅 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는데 한 간사가 몇 군데서 전화가 왔다고 알려 주었다. 글을 쓰기 전에 일단 그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첫 번째 전화는 음성 메시지를 듣고서 답을 남기는 것으로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다음 전화는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나는 ‘브라이언’이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에 18개월 된 그의 아들이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메모를 읽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나 역시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가슴이 먹먹했다. 잠시 후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지난 20년 동안 이런 경험을 종종 해 본 터라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비통한 마음만을 표현한 뒤 침묵으로 대화를 채웠다. 그런데 조금 뒤 브라이언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제가 후진하다가 쳤어요.”

더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브라이언의 짧은 설명을 듣고 난 뒤 나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게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건가요?”

나도 안다. 이것이 별로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라는 걸. 이 상황에서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브라이언이 그 일이 있고 난 뒤 몇 주가 지나서야 전화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이언은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이 순간, 난생처음으로 예수님의 실재를 만났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이상한 일인가요?”

물론 난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다. 그리고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끝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나는 브라이언과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이런 놀라운 아이러니를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예수가 나에게 실재가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브라이언과 같은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끝’에 이르는 건 한차례의 사건으로 끝나는 경우보다는 매일같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나의 끝이야말로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모두 잘 살다가 떠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그분의 길을 가로막으면 내가 살아야 할 진정한 삶을 놓칠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일시적인 행복이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 그 이상의 삶. 당신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런 삶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가장 유명한 가르침은 산상수훈이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설파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생각할수록 충격적인 말씀이다. 나의 끝에 이르러 절대 무기력을 절감할 때, 비로소 내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니, 이 세상의 논리와는 철저히 대치된다. 이 얼마나 혁명적인 가르침인가. 이 새 나라에서는 새로운 법이 다스리는데 그 법은 하나같이 낡은 법과 상반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적인’ 규칙이나 법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관한 것도, 적국의 전복을 암시하는 말씀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삶의 ‘표면’일 뿐이다. 예수님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우리 내면을 다루길 원하셨다. 내면이야말로 표면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내적 작업으로 시작된다.

-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중에서
(카일 아이들먼 지음 / 두란노 / 24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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