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집어 든 알베르 코엔의 『내 어머니의 책』이 더욱 나를 불편하게 한다. 코엔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었던 어머니를 회상하며 두고두고 마음 아파하던 일들……. 그중 하나는 새벽 네 시가 될 때까지 귀가하지 않는 그를 밤새 걱정하던 어머니가 그를 초대했던 친구 집으로 전화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가 “내 어머니와 비교한다면 형편없고 무가치한 인간들”이었다고 기억하는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하던 곳으로 아들이 걱정되어 전화했던 그의 어머니. 궁색한 삶이 느껴지는 외국인의 억양을 풀풀 풍긴 어머니가 창피했던 그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런 아들 앞에서 아무 죄 없는 어머니는 잘못했다고 자책하며 울었다. 코엔은 그때를 회고하며 말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괴롭히는가.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우리의 힘은 얼마나 끔찍한가, 또 우리는 그 힘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가.”

십 대의 어느 날 나도 코엔처럼 어머니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낸 적이 있다. 그 일을 떠올리며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는 내게 코엔의 글은 상처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굵은 소금 알갱이처럼 치명적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코엔의 어머니처럼 자식인 나를 높이 평가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없었다. 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잘 알았기 때문에 자식에게 환상을 갖는 다른 어머니들보다 측은해 보였다. “절대로 엄마처럼 희생만 하고 살지 않겠다”며 독기를 품고 성장하는 딸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던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비해 이성적이었으나 나를 잘 다루지는 못했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무렵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생업에 뛰어들었던 어머니의 병도 시작되어 나와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되도록 진료 날짜를 맞춰 같이 다녔다. 내가 학생이라 우리는 밤기차를 타고 꼭두새벽에 서울에 도착하곤 했는데, 이미 정신도 육체도 허약했던 우리는 새벽 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너무도 추워 거의 패닉 상태였던 나는 당장 따뜻한 여관방에라도 들어가 몸을 녹이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이른 아침을 먹던 병원 근처의 식당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기서 식사하는 것으로 몸도 녹이고 돈도 절약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쩌면 유난히 깔끔했던 어머니는 기차역 앞에 있는 허름한 여관방에다 딸을 누이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식당의 첫 손님이 되어 매번 똑같은 생선찌개를 먹었다. 그리곤 또 마냥 진료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긴긴 시간 동안 어머니는 계속되는 나의 짜증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짜증은 심해지다 못해 미친 듯이 화를 내기에 이르렀다. 코엔이 어머니에게 미친 듯이 화를 냈던 것은 어머니로 인해 남들에게 자신의 허세가 들통 났기 때문이지만, 내가 미친 듯이 화를 냈던 것은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어머니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늘 가족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던 아버지와 결혼해 힘들게 살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위험수위까지 차올라 엉뚱하게 폭발했던 것이다. 우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경제적 짐까지 졌던 어머니는 병을 얻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선뜻 한 푼 쓰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늘 조용히 울었으며, 조용히 인내했고, 조용히 우리를 키웠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어머니가 힘들게 사는 모습을 가슴 아파하던 나는 결국 그 새벽 거리에서 광란하고 말았다. 머릿속 회로가 뒤엉켜버린 나는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싫다!”고 외쳤고, “엄마가 바보처럼 살아서 이 지경이 되었으니 모든 게 엄마 잘못”이라며 몰아붙였다.

그때 어머니는 벽을 향해 날아가는 유리 공 같은 나를 슬퍼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봤을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혼내지도 않았고, 내 분노를 가라앉히려 허둥대지도 않았으며, 우리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날뛸수록 더 분노가 차올랐던 나는 그런 어머니를 길에 버려두고 혼자 사라져버렸지만 그날의 일은 백 프로 비밀에 부쳐져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정말이지 어머니가 아닌 그 누가 나의 허물과 잘못을 그처럼 완벽하게 덮어줄 수 있단 말인가.

코엔은 어머니를 보내고 말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판단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내 아들’이라고, 그녀는 마음속 가득한 믿음으로 말했을 뿐이다.”

나는 어머니가 아팠던 긴 시간 동안 어머니가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로울지 알고 두려워했다. 세상의 냉정한 판단에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로 채워주는 존재는 오직 그녀뿐임을 그때 이미 나는 알았다. 그래서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없는 시간은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걷는 겨울 남산은 정말 추웠다.

- 『마음이여, 걸어라』 중에서
(조은 지음 / 푸른숲 / 232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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