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의학의 최첨단 트렌드, ‘병인’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생활 습관과 주변 환경이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화병, 우울증, 당뇨병, 고혈압, 중풍, 관절염, 노안으로 인한 시력 저하, 각종 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인병들은 개인의 특정한 습관이나 환경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특히, 환경에 저항하는 능력이 약한 어린이들은 그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데 어린이들의 시력 저하, 비염, 성장 부진, 비만, 성조숙증 등이 증가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유전이란 ‘부모님에게 받은 같은 형질의 유전인자’라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유하는 습관과 환경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숙명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라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겠지만, 습관과 환경을 물려받은 것이라면 우리는 굳은 의지로 바꾸고 개선할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인은 말 그대로 ‘병의 원인’을 말합니다.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병들이 잘못된 습관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대명제에서 시작합니다. 한의학에서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 중에 ‘병인변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병인의 모체가 됩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수많은 처방들이 소개돼 있는데 병인병증으로 분류된 처방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할 만큼 병인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론입니다.


내가 피곤한 이유

지금 내 몸이 많이 피곤하다면 왜 그럴까요? 태음인이기 때문에? 소음인이기 때문에? 체질 때문에 피곤하다? 그건 말이 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소음인이 피곤하면 소화가 안 되고 불면증이 오고 손발이 차고 어떻고 등등으로 말하는 건 괜찮겠지만 내가 지금 피곤한 이유가 소음인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피곤한 이유는 어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하루 종일 더부룩하더니 그렇다, 어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정신적으로 시달렸더니 그렇다 등등으로 이야기하면 쉽게 수긍이 갑니다.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것이 맞는지 알려면 일을 줄여보면 됩니다. 일을 줄이니 피곤이 풀리고 몸이 좋아졌다면 일을 많이 한 것이 피곤한 증상의 원인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줄여도 피곤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피곤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을 많이 하는 것과 피곤한 증상은 상관관계가 적은 것입니다.

일을 줄이니 피곤한 증상이 사라져서 그동안 피곤했던 이유가 일을 많이 해서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현재 일을 줄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어떨까요? 그럴 때에는 바로 음식과 약, 생활 습관 관리 등이 필요합니다. 인삼이나 황기 같은 한약재는 이런 증상을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인삼차를 마시거나 황기를 꿀과 함께 버무려 살짝 볶아서 만든 황기밀구차 같은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일을 줄이기 힘들다면 밥 먹는 시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식사만 규칙적으로 잘해도 과로에서 오는 만성 피로를 상당량 줄일 수 있습니다. 내 몸이 피로한 이유는 내 몸에 피로 물질이 쌓여서가 아닙니다. 내 몸을 피로하게 만드는 원인과 조건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 『병인』 중에서
이혁재 지음
나비의활주로 / 378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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