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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영화 ET에서 외계인과 소년이 처음으로 만날 때 팔을 뻗어
손가락과 손가락 끝을 서로 맞닿았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생각의 거울을 옆으로 치워놓고 얼굴과 얼굴이,
그것과 그것이 만난다면 아마 이런 것을 이름 붙여서
사.랑.이라 하지 않겠는지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과리가 되고…” 친구의 음악 평론집에서 <성경>의 이 구절을 접했을 때,
오랫동안 알았다고 생각해 오던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꽹과리라니! 그렇다면 사랑이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그 즈음 어머님께서 투병 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서울에 계신 여자 목사님께 안수를 받으러 가실 예정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분이 여자 목사님이어서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여자,
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고 생각했었고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도 다녔었는데
막상 목사님 댁에 거주하면서 일체의 교회의식에 참석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불교의 가르침으로 생명에 대한 인식의 기반을
마련했기에 마치 여성이 순결을 내줄 때처럼
최후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고민 고민 중 떠오른 한 생각! ‘내가 불교와 기독교를 알기 이전에
어머님이 나를 낳아 주셨으니 종교보단 어머님이 먼저다!‘
이 생각 덕분에 나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목사님 댁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오빠들은 거실에 앉아 다음날 일을
상의하시고, 나는 문이 열린 옆방에서 얘기를 들으며 누워 있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저만치에서, 저만치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 거리의
저만치하고는 달리 먼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것 같기도 한 공중에서
누군가 맑고 빛나는 얼굴과 가슴까지의 모습으로 조용히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는 것입니다. 나 역시 그저 조용히 느끼고만 있었는데…
평생 받을 사랑을 다 받은 느낌이었으며
‘그래~사랑은 원래 내 안에 다 있는 것이었어!’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솟아나오면서 사랑에 대한
골똘한 의문이 홀연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기보다는 이미 내 안에,
누구나 안에 있다는 믿음이 그냥 저절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고나 할까요.

이튿날 서울 목사님 댁 현관 옆방에 들어가니
액자에 어제 본 모습과 비슷한 그러나 느낌은 좀 다른
그림 한 점이 벽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 『지금 그것이 어디에 가 있나요?』 중에서
(곽은구 지음 / 불광출판사 / 208쪽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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