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 지음/두란노/173쪽/6,500원)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노란 손수건"이란 이야기를 읽은 것이 생각난다. 광활한 미대륙을 횡단하는 고속 버스에 젊은이들이 가득 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중서부의 한 정거장에서 웬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하나가 버스에 탔다. 청년은 버스 구석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근심 어린 표정이었다. 버스에 있던 젊은이들은 커피와 도넛을 나누어 주면서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음이 많이 열린 그 청년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청년은 고등학교 때 집에 있는 돈을 다 훔쳐서 무작정 도망쳤다. 먼 곳에 가서 금세 돈을 탕진한 청년은 그 뒤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다가, 마침내 도둑질까지 해서 감옥에 가게 되었다. 감옥에 있으면서 이 청년은 자신이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비로소 깨닫고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정말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했다.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 용서해 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자기가 출옥하는 날 바로 고속버스를 타면 오후 몇 시쯤에 동네 앞 버스 정거장을 지나게 될텐데, 만약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 준다면 그 정거장 앞에 있는 은행나무 가지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럴지라도 추호도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 사연을 듣고 난 젊은이들은 일순간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젊은이의 고향 가까이 이르자 모두들 창에 매달려서 문제의 은행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이 청년은 너무 떨려서 감히 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버스가 서서히 커브를 돌면서 마침내 문제의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밖을 보던 젊은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휘파람까지 불어 대며 기뻐했다. 그리고 청년을 일으켜 밖을 내다보게 했다. 그곳에는 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이 몇 장씩 매달려 있는 나무가 마치 은행나무 같이 노란 잎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그 앞에 웬 노신사가 엄청나게 큰 노란 깃발을 들고 버스를 향해 힘차게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버스 안의 젊은이들의 눈도 젖어 들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멈추자, 청년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서서히 문으로 걸어갔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젊은이들은 꼭 껴안고 울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 『홈, 스위트 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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