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우리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벗겨주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며,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심어 준다. 믿음은 천국 문을 열어 주며 메마른 심령에 촉촉이 배어드는
시원한 물과도 같다.

그러나 믿음이 언제나 이렇듯 간단하고 쉬운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간절히 바란다 해도 쉽지
않다. 굳건한 신앙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뭔가 가로막는 것 때문에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자유를 맛보고 싶어도 장애물이 버티고 서 있다. 반론이 못살게 군다. 회의가
조롱한다. 가슴은 하나님을 향해 치솟지만 지성은 그들을 바닥에 꽁꽁 묶어 둔다.

한때 빌리 그레이엄의 설교 동역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찰스 템플턴 역시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응어리져, 결국 기독교를 배격하게 된 사람이다. 템플턴도 그레이엄처럼
대형집회에서 군중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도록 초청하곤 했다. 템플턴이 머잖아
전도자로서 그레이엄을 능가하리라 예측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큰 타격을 입기 전 일이었다. 템플턴
의 믿음은 집요하고 고집스런 회의에 연신 두들겨 맞아 결국 스러지고 말았다. 어쩌면 영원히....


템플턴의 고백에 따르자면, 그는 빌리 그레이엄을 알기 15년 전에는 토론토 <글로브>지의
간부로 있었다.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지저분한 스트립쇼 술집에서
밤을 보내고 막 집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초라하고 더럽게 느껴져 어둠 속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내 위에 까만 이불이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 내 마음과 몸을
온통 헤집고 지나갔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주님, 내려오소서. 내려오소서....'
그때였다. 천천히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 짐은 내 다리와 몸통과
팔과 어깨를 통과해 멀리 날아가 버렸다. 표현할 수 없는 온기가 몸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불이 들어와 나를 깨끗이 태우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바뀔까 봐 나는 숨소리조차 바짝
죽였다. 입술에서 나직한 속삭임이 되풀이되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온몸을 감싸는 찬란한 행복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
왔다."

언론인의 길을 버리고 사역자가 된 템플턴은 1945년 YFC 청소년 집회에서 그레이엄을 만났다.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 늘 붙어 다니는 친구였고 교대로 강단에 올라 말씀을 전했다. 후에
템플턴은 교회를 개척했는데 천이백 석 예배당이 곧 차고 넘쳤다. 이에 대해 <아메리칸 매거진>
지는 템플턴이 '대중 전도의 새로운 표준을 수립했다'고 평했다. 그레이엄과의 우정도 깊어졌다.
그레이엄도 언젠가 한 전기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내 평생 사랑한 친구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곧 회의가 템플턴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회심을 경험할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 의문과 회의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나는 그 불가피한 일을 감당
할 만한 믿음의 버팀목이 약했다.... 내 이성은 도전에 나섰고 때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신조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회의에 찬 템플턴은 친구인 빌리 그레이엄을 잡아끌고 있었다. 성경은 믿을 만한 책이라는
확신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템플턴은 강변했다. "빌리, 자네는 50년이나 뒤져 있어.
아무도 더는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지 않아. 자네 신앙은 너무 순박해."

템플턴이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듯했다. 그레이엄은 "의심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분명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성경을 믿을 수 없다면 앞으로 더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레이엄의 사역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 로스앤젤레스 전도 대회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기로를 맞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해답을 찾아 성경을 뒤졌다. 기도했다. 묵상했다. 달빛 비치는 샌버나디노 산을
무거운 마음으로 걷던 중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레이엄은 성경책을 붙들고 무릎꿇었다.
그리고는 템플턴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제기하는 철학적, 심리학적 문제 중 자신이 풀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 최대한 솔직히 털어놓으려 했으나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이 있었다. 마침내 성령에 힘입어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아버지, 믿음으로 이 책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지식적 의문과 회의보다 믿음을 더 앞자리에 두겠습니다. 성경이
아버지의 영감으로 된 말씀임을 믿겠습니다.' 여전히 젖은 눈으로 무릎을 일으켰을 때 지난 몇
달간 느끼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이 감지되었다.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다리를 건넌 셈이었다. 영혼에서 벌어진 영적 전투에서 싸워 이겼음을 나는 머리와 가슴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레이엄에게 중대한 순간이었지만 템플턴이 보기에는 턱없이 빗나간 사건 전개였다.
템플턴은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지성을 닫음으로써 지적 자살을 감행한 것이다." 그가 친구를
향해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연민이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삶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후 그레이엄에게 일어난 일은 역사가 알고 있다. 그는 이 시대 가장 설득력 있고 영향력 있는
전도자요,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템플턴은 어떻게 되었을까? 회의에 무너져
사역의 길을 떠난 그는 캐나다로 돌아가 시사 해설가 겸 소설가가 되었다.

템플턴의 지성은 믿음을 몰아내 버렸다. 그렇다면 믿음과 지성은 정말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사고하는 지성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인생의
긴 세월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안이한 논리나 얄팍한 근거 위에 세워진 고지식한 믿음
이야말로 정말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성에 어긋나지 않고 합치되는 믿음이다.
실체와 유리되지 않고 실체에 근거한 믿음이다. 기독교 신앙이 이성의 정밀 검사를 견뎌 낼 수
있는지 기필코 밝혀 내야 했다.

드디어 내게 찰스 템플턴과 얼굴을 맞댈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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