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그와 동행, 꿈과 이상 이뤄가야죠."

"지금 아치가 잠시 깨어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처, 보고 싶었어요. 반가워요."라고.
아마 아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하겠지요. "제인, 내가 그 동안 뭘 했지?"

8월 6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대천덕(루벤 아처 토리 3세) 신부와 부인 현재인(제인 그레이
토리, 81세) 씨. 9일 고인의 빈소가 있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현씨는
"아처가 2개월 이상 혼수상태에 있었지만 다시 일어날 줄 알았어요... 아처가 평소 입던 옷과
안경도 여기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청빈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푸른 눈의 성자' 대천덕 신부. 현씨에게 고인은 신앙의
스승이자 삶의 반려자였다. 결혼 후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두 사람,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 매일 오후 4시반 타임에 대화의 시간을 가져온 부부.

1957년 한국으로 건너와 신학교를 세운 그는 1965년 돌연 강원도 태백시의 산골짜기를 선택
했다. 기독교 공동체인 예수원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54년의 세월.
이 부부를 둘로 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들은 언제나 하나였다. 현씨는 빈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남편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상객들을 맞는 그의 얼굴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따뜻한 미소가 감돌았다.

"서운하지만 준비는 했습니다. 93년 남편이 심장 질환으로 고생할 당시, 의사는 그가 1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죠. 그때 남편의 대답은 그랬어요. '전 벌써 죽을 준비가 됐습니다.'
지금 그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 퀸이었던 현씨는 40년 여름 미국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
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다. 그의 기억에 고인은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아처는 기독교인
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현씨는 "아처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며, "화가로서 꿈도 있었지만 아처와 함께하는 삶이 더 아름답고 소중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제인 그레이는 기꺼이 '현재인'이 되었다. 아처와 함께 가는 길은 그곳이
이역만리 낯선 한국이든, 강원도 오지든 문제될 게 없었다.

현씨는 한국은 '특별한 땅'이라고 했다. "아처와 나는 정이 많고 따뜻한 한국 사람을 만나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자주 했습니다. 예수원은 노동과 기도의 삶이 충만한 곳이었고,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부족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현씨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하면서
살며시 웃는 현씨의 모습은 54년전 남편을 처음 만난 수줍은 처녀처럼 보였다. 그는 앞으로
예수원에 머물며 남편의 꿈과 이상이 현실로 바뀌는 과정을 계속 지켜볼 계획이다. 예수원에
안장될 남편의 묘비에는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성경 구절을 새긴다.

<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장 17절)

- 김갑식 기자 <8월 10일자 동아일보>


* 고 대천덕 신부를 추모하며 <대천덕 자서전> 중에서 옮깁니다.

한국에서 신학교를 세우라는 부르심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일이 내가 계속해서 할 일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내심
'나는 개척자고 모험가다. 그러나 신학교는 그 통념상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내가 그런 자리에서 얼마 동안 견딜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초기 몇 년 동안은 정말 개척하는 일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적합하지
않은 일을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물었다.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어야
합니까?" 그때, 내 속에서 분명한 대답이 들렸다. "7년이다."

이 말은 이후로도 항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알면 혹 불안해할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해 오셨기 때문이었다.

신학교를 세우는 일에는 교수를 모집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일뿐만 아니라, 필요한 건물을
짓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건축을 위한 재정을 보내 주셨지만, 한국어 공부와
건축 감독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제인이 어학 공부를 포기하고 신학교에
남아 인부들을 관리하기로 했다. 이것은 우리가 이후에 하게 될 예수원 일을 위해 하나님
께서 미리 준비시키신 것이었다. 예수원을 시작했을 때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제인과 함께 신학교 건축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원의 초창기 건물들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이 있었고 그 일에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인과 함께 일했던 그들은 우리와
함께 광야로 나가기를 자청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타피스트리에 모든 것을 알맞게
짜 넣고 계셨다.

6년이 지났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장기적인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해야 했던 제인과 나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쉬워했던 것 한 가지는 늘 꿈꾸어 왔던 실험실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험되고 증명될 뿐만 아니라, 개인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와 바깥 세상과의 관계가 실험되고 증명되는 실험실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책에서 읽은 것이나 강의에서 들은 것으로 시험을 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책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한 반응을 본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7년이라는 기한에 상관없이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즈음 나는 온타리오에 있는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거기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 갑자기 주님이 내게 "사표를 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속으로 '주님, 당신은 7년이라고 하셨는데, 아직 6년밖에 안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즉시 주님께서 "나와 논쟁하지 말라. 사표를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논쟁을 계속했다. 나는 제인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님, 갈
곳도 없고 비행기 삯도 없이, 아내와 아이를 부양해야 할 가장으로서 아내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 직업을 포기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주님은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네 아내의 문제는 내가 책임지마. 너는 사표를 내라."

나는 주교에게 말했다. "이제 학교를 떠나고 싶습니다. 주님이 나를 평신도의 일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내 입에서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성령님이 내게 지식의 말씀을 주고 계시며,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힌트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일리 주교는 그 자리에서 내 사임을 받아들였지만
"1년은 더 일해 주십시오. 지금 공부하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주님이 나를 슬쩍 찌르시며 "그것 봐라, 7년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내가 아내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내 사임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그 말을 할
용기를 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가 이미 말을 했으리라고 생각한 주교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 버렸다. 제인이 내게 "당신이 사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그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제인은 내게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달력을 꺼내
그 날짜를 찾았고, 제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맞아요. 나도 그 날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 순간 주님은 다시 한 번 나를 슬쩍 찌르셨다. 나는 하나님이 "그것 봐라, 내가 말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미소 지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누린 안도감과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제는 그 동안 밑바닥에
흐르던 불만을 인정하고 표현하며 새로운 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하고 싶어했던 일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
았다! 하나임이 실재하시며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성령 또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우리를 '신비주의자'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멀리 떠나
산으로 가는 일 말이다. 그 일이 결정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 해가 지날 무렵,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어떤 일로 부르시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원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인지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항상 확신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 때문에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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