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앙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나는 그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기독교가
문화 발전에 다양하게 기여하고 있음을 보았다. 기독교에 뿌리를 둔 교육, 학문, 의술,
인권, 민주주의, 예술, 구호 사업 등은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독실한
무슬림이나 힌두교 신자들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기독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유럽이
으켰던 전쟁들과 현대 서구 기독교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죄와 퇴폐, 가족의 붕괴
따위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그들의 주장을 전혀 반박할 수 없었다.

어떤 종교가 됐든지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된 경우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교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 유대인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복음을 선포하셨어. 덕분에 우리
유대인들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지. 하지만 그분이 약속하신 하나님나라를 좀 보여주게.
역사를, 특히 크리스천들이 유대인들을 핍박한 역사를 좀 살펴보란 말이야. 그게 정말
구원받은 세상의 모습일까?"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은 구하는 자에게 베풀고, 원수를 사랑하며, 결코 정욕에 빠지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항상 용서하며, 핍박을 즐거워하라는, 실제 인간 행동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필연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숭고한 도덕적 이상을 열거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크리스천이 겪는 실패에 대해 해소되지 않는 긴장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말인가?

영적인 불안정 상태가 계속되게 만든 '인식과 행동의 불협화음' 문제는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두 명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서 겨우 해결의 가닥을 찾았다. 크리스천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해는 톨스토이적인 부분과 도스토
예프스키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누가 봐도 안정된 인간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심리학적
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들 러시아 소설가 두 사람이 내가 균형 감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삶이라는 순례 여정이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그 두 작가는 생각이 깊은 크리스
천(또는 다른 신앙의 가진 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갈등하게 마련인 문제들, 즉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삶과 현재 살고 있는 삶 사이의 엄청난 간격이라든가 신앙의 이론과 실천
사이의 격차 따위의 난제들과 타협을 이룰 수 있도록 안내자가 돼 주었다. 그중 먼저 만났던
톨스토이는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농부들의 평범한 삶과 자신과 같은 부유층의 방탕한 생활 사이의 괴리감은 점차 톨스토이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해서 결국 글쓰는 능력을 마비시켰다. 농부들은 삶과 노동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고난을 견디는 법이라든지 죽음을 맞이할 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톨스토이에게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었다. 해답을 얻고 싶어서 부처와 쇼펜
하우어, 예수의 철학을 공부했지만 어디서도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삶이 문제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격정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된 톨스토이는 실제로 예술적인 사명을 포기하고 오직 인생의
의미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매달렸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을 가감 없이 받아
들이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자신이 거느리던
농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작품의 판권을 포기했으며 소유지를 나눠주었다. 평민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농부의 옷을 입고 스스로 신발을 만들어 신었으며 밭에 나가서 땅을
일궜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며 세상을 개혁하려는 톨스토이의 노력 때문에 집안에는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톨스토이에게는 경건을 향해 나가는 방법이었지만, 그의 부인 소냐의 눈에는 가족
을 학대하는 어리석은 짓으로만 보였다. 완벽에 이르려는 욕구 때문에 톨스토이는 계속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스스로 세운 규칙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자기 훈련에는 실패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면서도 개개의 인간을 사랑하기에는
힘겨워했다. 심지어 자기 피붙이까지도 사랑할 수 없었다. 성적 문란 또한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존 업다이크의 말을 빌자면, "예술의 햇살도 도덕주의와 자아 멸시로 일관하는
수도사 톨스토이의 골방까지는 스며들지 못했다."

마침내 거룩함에 이르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시도는 실망으로 끝을 맺었다. 임종을 맞는
순간까지도 그의 일기와 기록들은 이상과 삶의 현실 사이의 모순만 드러내는 서글픈 주제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을 속이기에는 너무 정직했기에 톨스토이는 생생한 양심의
소리를 묵살할 수 없었다. 그를 위선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위선자란 자기
아닌 무언가로 가장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톨스토이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어느 간이역에서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채 세상을
떠났다.

톨스토이가 겪은 실패를 보면서 그의 비참한 삶에서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톨스토이가 쓴 여러 편의 신앙적인 글들을 읽었으며, 그때마다 예외없이 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이상을 경외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복음이 정의의 문제, 돈의 문제,
인종의 문제, 교만이나 야망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 등 다양한 영역의 난제들을 모두 해결
해준다고 말하는 이들과는 달리, 톨스토이는 실제로 복음은 우리에게 짐을 더해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통일된 신앙 체계는 결국 외면적인 계율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유대교가 그렇고, 불교가 그랬으며, 힌두교나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수님
께서는 외면적인 계율을 만드는 것을 거부하심으로써 기존의 신앙 체계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소개하셨다.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계율을 만드셨더라면,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걸 지키는 것만으로 스스로 의롭게 되었다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하나님나라는 당신 안에 있다>의 핵심부에서 그리스도의 접근 방식과 다른
종교들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외면적인 신앙의 경우,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 검증해볼 수 있는 기준은
계율(주일 성수, 할례, 십일조 따위의)을 행동으로 지키고 있느냐의 여부다.
그런 식의 검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경우,
검증의 기준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이상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자각이다.
완전함에 얼마나 다가갔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완전함에서 벗어난 정도뿐이다.

외면을 규정하는 율법을 좇는 사람은 기둥에 걸린 등잔 불빛 아래 서 있는
것과 같다. 지금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빛 가운데 있지만, 거기서 한
걸음도 더 멀리 나갈 수 없다. 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저만치 앞을 비출 수 있도록 막대기에 등잔을 매달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불빛을 좇아가면 마른땅을 디딜 수 있으므로 먼데까지 걸어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소중한 지혜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의 신앙 산문들은 대체로
어수선하고 불안정하다. "완전함에서 얼마나 탈선했는가" 외에는 특별한 인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 내면의 움직임을 진단할 때마다 톨스토이는 도덕적인 실패와 위선, 불신
따위를 확인하고 주체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는 희망을 제시하기보다는 절망을
내놓는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들은 "인류가 저지른 끔찍한 죄에서 구원받는 유일
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아무도 벌하거나 개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끊임없이 바른 신앙을 추구했던 자세가 결코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주었기에, 나는 톨스토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비록 진리를 깨닫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 자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자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한다.

안타깝게도 톨스토이는 복음을 통해서 삶의 위로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리알처럼
맑은 명민함으로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빛에 비추어볼 때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모든 부족함을 메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다음 단계까지는 나아
가지 못했던 것이다.



- <내 영혼의 스승들>(필립 얀시 저, 좋은씨앗)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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