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을 간증하고자 한다. 내가 '십자가의 도'를 처음 깨달은 것은 하나님 앞에 헌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나는 영적인 어린아기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주님이 나를 통해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보고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체험을 했다. 그리고 그 기쁨의 감격에
못 이겨 소리쳤다. '오! 주님. 이 기쁨은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다. '네가 만일 500명을 구원하는 데 나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 기쁨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 그리고 주님이 다시 물으셨다. '너는 너를 피곤케 만드는 감성적인 기쁨을 떠나서
내가 너의 전체를 가질 수 있도록 너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
람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네 자신을 맡길 수 있느냐?'"

"그 무렵 나의 신앙 성장과 십자가의 길을 발견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귀용(Guyon) 부인
이 쓴 책들이었다. 그녀의 자서전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홉킨즈(Hopkins)
목사님의 서재에서 그 책을 처음 발견했던 것 같다. 나는 귀용 부인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도 없
었지만, 목사님의 서재에서 그녀의 자서전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영적 상태는 성령
세례를 체험하고 난 직후였기 때문에 주님의 깊은 은혜와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 아래 푹 파묻혀 있
었고, 사사로운 것은 신경조차 쓸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귀용 부인의 책을 읽으면서 십자가의 길
을 깨달았고, 그 길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아닙니다! 나는 그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나의 모든 영적인
체험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 길은 걸을 수 없습니다"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내가 그 책을 다시
열어서 읽어 내려갈 때, 주님은 조용하고 온유하게 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하나님과 영원히
끊기지 않는 교제와 깊은 생명의 체험을 원한다면, 너는 이 길을 가야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 "나는 그 길을 걸을 것인가?"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아니다!"였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덮어 한 곳에 치워 버렸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그 책을 다시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도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열매를 원한다면 이 길 하나밖에
없다. 나는 너의 감성적인 기쁨을 가져가지 않겠다. 네가 갖고 싶으면 가져도 된다. 그 일시적인
감성적인 기쁨으로만 살든지, 아니면 십자가의 길을 택해 영생하는 열매를 맺든지 그 선택권은
너에게 달려 있다. 너는 무엇을 택하겠느냐?"

결국 나는 세 번째 던져진 주님의 권고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열매를
맺기 위해 이 죽음의 십자가의 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 후로 내 안에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영적인 경험들은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귀용 부인이 표현한 대로
"믿음의 어두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 듯한 어두
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맞습니다, 주님! 이 십자가의 길은 내가 원해서 택한 길입니다"
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갔다.

대체 주님이 어떤 의도로 나를 이러한 길로 인도하셨는지 모르던 나는, 어느 날 집회를 인도할 때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남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그날은 집회에 참석한 모든 영혼들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린 생수의 비에 흠뻑 젖어버린 듯한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이 임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린 생수에 흠뻑 젖어 중생하고, 성화되고, 자유케 되
는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개인에게 임한 축복이 아니라 모임 전체에
나타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였다. 그날 나는 그 집회에서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 단지 주님이 주시는 몇 마디 말만 했을 뿐, 나머지는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셨다. 그 순간부터 나는 지식적으로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한 일의 밀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배가 법칙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영적인 열매를 맺는 것은 '일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죽는 데'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종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회피하려 한다. 그들은 열매를 맺기는 원하지만, 열매를 맺기 위한 십자가의
길은 걸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앙 생활 가운데 느낄 수 있고 의식할 수 있는 혼적인 생명
만을 갈망하고, 의식할 수 없는 영적인 경험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기초로 한 영적인 삶만이 '굴곡'이 없다는 사실이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의 모습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상상해 보자. 밀알은 아름다운 껍질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단단하다. 생명의 씨는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올
수 없다. 또 그 씨가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동안은 아무 생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한 알의 밀알
이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일이다.

그 밀알은 어느 날 땅 속에 떨어져 겉껍데기를 잃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과 태양 그리고
'생명'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모든 요소들을 상실하게 된다. 이제 그 밀알은 땅 속 깊숙이 파묻혀
바깥 세상과 분리되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 밀알을 살펴보면 반질반질
했던 껍질은 다 벗겨져 버리고, 그대신 작은 생명의 싹이 돋아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싹은 어두운 땅을 뚫고 나와 찬란한 태양빛을 받게 되고,
결국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풍성한 이삭으로 변하는 것이다!

'밀알의 생명'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연스런 방식대로 그 생명을 성장시켜 나간다. 하나님은
너무나 조용히 일하신다. 주님의 일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나 또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큰 소리로 알리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기도로 구할 때,
주님은 "내가 네 기도를 응답했다"는 신호를 보내시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 놓으신다.

열매를 맺는 삶이란 남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삶이다. 또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장중에 완전히 떠맡기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치 않는
'완전 항복'이 십자가의 길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과 너무나 다르기에, 하나님 앞에 더 귀중한 것이 아닐까?
신앙 생할의 모든 주관적인 '체험' 안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그
안에 묶여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 '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음을 알게 된다. 또 우리 자신이 어떤 능력도 없이 하찮게 보일지라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영적인 배가 법칙대로 조용히 열매를 이루어 간다면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 때에만 우리는 어떤 '영광'이나 '자랑'에도 사로잡히지 않게
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한복음 12:24-26)

- 제시 펜 루이스 저 <십자가의 도>(두란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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