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가 들어온 지 석 달쯤 되자, 팸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둘이 점심식사를
막 마쳤을 때였다. 토니는 양탄자를 설치하는 다른 회사에 일자리를 얻어 낮에는 출근하고
없었다. “겁튼 씨,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팸이 말을 꺼냈다. ‘오, 안돼!
토니가 이제 일자리를 구했으니 나가겠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나는 생각했다. 팸은 일어나서
접시들을 싱크대에 넣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말씀 드렸어야 했지만, 그러면 저희들을 받아
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제 말을 들으시면 아마 저희가 나가길 바라실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는 걸 미룰 수 없었어요....” 팸이 손으로 행주를 짰다. “저, 저는....” 팸이
침울한 두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아기를 가졌어요.” 이 말이었구나! “글쎄,
한 가지는 팸 당신의 말이 맞군요. 난 ‘세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 그건 확실해요.”
내가 말했다. 팸은 돌아서서 싱크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자네들을 다시 거리로 내보낼
수는 없지. 더구나 곧 아기가 태어날 텐데.” 나는 팸을 안심시켰다.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
하려고 애썼지만 마음속에서는 소리치고 있었다. ‘아기라고! 아기를 도대체 어디서 키우지?’
“이 집에는 그만한 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팸이 말했다.
“우리가 옷장을 방밖으로 내놓으면 조그만 아기 침대를 그 자리에 끼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아기를 조용히 기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답했다.

몇 달이 휙 지나갔다. 팸은 조그만 방에서 아기 침대를 이리저리 옮겨 보다가 침대와 벽 사
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기저귀와 병을 사고, 집 전체를 부지런히 페인트 칠
을 하고 벽지도 발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사브리나라는 이름의 빨간 머리 아기가 태어났
다. 팸은 아기를 조용하게 기르며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곧 아기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고, 다시 5개월, 그리고 12월 중순이 되어 다시 크리스마스가 거의 가까웠다.

어느 날 저녁, 해마다 이맘때면 해오던 대로 나는 거실에 앉아 누가복음 2장을 읽고 있었
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
구절을 읽었다. 아기 예수님이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했으리라 생
각하니, 비록 어떤 면에서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데이비스 가족에게 방을 내어 주길 아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적힌 묵을 방 하나 없이 붐비는 여관에 대해 생각하다가, 정
작 이야기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여관의 방이
라기보다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할 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하나님께서 내게 시키려고 했던 일도 바로 그 일이리라. 물론 데이비스 가족에게 내
집의 방을 내 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에도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만들게 하려고 노
력하셨던 것이다.

겨울 바람이 창문을 내리쳤고, 팸이 창문 틈 사이에 끼워 놓은 신문지 사이로 바람이 스며
들었다. 나는 일어나서 난로 불을 지폈다. 아기를 위해 방을 따뜻하게 해야 했다. ‘소파를
벽으로 밀어 놓으면, 여기에 아기가 놀 공간이 생기겠구나. 한참 자라는 아기를 침실에만 있
게 할 순 없지.’ 나는 혼잣말로 말했다. 층계로 걸어가 그들을 불렀다. “토니, 팸!” “왜
그러세요. 겁튼 씨?” 토니가 급히 달려왔다. “뭐가 잘못 됐나요?” 팸도 놀라 남편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잘못 되고 말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우리는 트리 하나 없지 않
소!” “우리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만, 트리가 너무 비싸서요.” 토니가 답했다. “그렇군.
하지만 세워 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트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네. 지금은 다락방
상자 속에 들어 있는데, 은빛 가지에 반짝이는 색색의 조명등을 달고 근사하게 세워 놓으면,
그렇게 멋진 트리는 자네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게야. 집에 아기도 있는데 크
리스마스 트리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소!” 토니와 팸이 삐걱거리는 다락방 계단으로 달
려가 커다란 상자를 끌고 내려왔다. 팸은 가지들을 풀었다. 나는 소나무 잎들을 보기 좋게
펴서 토니에게 넘겨주고 구멍마다 꽂으라고 했다. 함께 일하니 너무 재밌었다. 여러 해 전,
내가 낡은 TV 안테나로 만든 회전식 세움대에다 트리를 세우도록 토니에게 말했다.

잠시 후 나는 색색의 조명등에 불을 켜고는 뒤로 물러앉았다. 그리고는 은빛 발레리나처럼
돌아가는 트리를 보며 감탄하는 그들의 탄성을 즐겁게 들었다. 그때쯤 위층에서 아기가 배
고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팸이 뛰어 올라가 사브리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팸이 우유병을 데
우러 부엌에 가 있는 동안 아기를 맡기라고 내가 손을 뻗자 팸이 놀라는 듯하더니 곧 기뻐
했다. 나는 아기와 조용히 눈을 맞추고 앉았다. 왠지 어색했다. 사브리나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봐서, 순간 나는 아기가 울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활짝 웃으며 통통한
손을 들어 내 뺨으로 가져왔다. 사브리나가 내 얼굴에 비치는 트리의 반짝이는 빛을 잡으려
한다는 걸 알고, 나는 크게 웃었다. 아기가 손으로 나를 만지자 아주 먼 옛날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또 한 아기가 생각났다.

토니가 창가에 촛불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팸이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캐
롤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리의 시간을 주관하시는 그분에게 속삭이듯 기도했다. “주님, 제
게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를 맞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투정을 부리고 안달했음에
도 저를 이 세상에 남아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이 늙은
이에게 일깨워 주는 데는 가끔씩 아기가 필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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