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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발로 나를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모습
6월이 깊어가던 25일 아침이었다. 우리 집은 용산역이 보이는 한강변 원효로3가에 있었다. 갑자기 온 도시가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이 술렁임이 무엇을 뜻하지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큰일 났구나" 하고 아침부터 시내로 들어가 버렸고 아이들은 모여서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주워들은 소식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틀이 지난 27일 밤이었다. 밤이 깊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누워있는 내 귀에까지 들렸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엇인가 상의하고 있었다. 밤이 깊도록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을 켜놓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삼형제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꽝' 하는 소리가 나고 집이 흔들려서 눈을 떴다. 창밖이 갑자기 한순간 환하게 밝아오더니 곧 사라지고 길에서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도 얼른 길에 나갔다. 등에 봇짐을 맨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한강다리가 끊어졌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민군이 한강다리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28일 아침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아버지는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갔다가 올라올게" 하고는 강가로 나가셨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인민군이 우리 동네 한강 둑에 탱크를 몰고 왔다.

6.25를 맞았던 며칠간의 일들을 떠올려보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이 며칠이 우리 가족에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깊은 고통의 경험이 되었다. 그 후 석 달 넘게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인민군 치하에 살던 일들은 죽음직전의 고달픔이었고 다시 수복을 해서 아버지와 만난 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인민군 치하에서 살면서 어머니와 나누었던 몇 가지 일들은 모자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체험이 되었고, 이 체험을 통해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중에 아주 작은 것 하나. 용산 철도청과 원효로 2가 뒤편 조폐공사에 미군기가 폭격을 하는 날이었다. 매일 아침이면 마치 조회를 하듯 폭격기가 날아와 한강다리, 용산역 주변, 그리고 조폐공사에 폭탄을 떨구었다. 폭격이 그치면 한동안 까만 연기로 온 동네가 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그 날도 폭격으로 온 동네가 새까만 연기로 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과 놀다가 어느 집 담 밑에 엎드려 있었다.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을 떴는데, 앞이 캄캄했다. 그때였다. 손바닥만한 쇠로 된 파편이 담 옆 광에 와서 맞아 '펑' 소리를 냈다.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어디서 "동규야" 하는 절규소리가 들렸다. 캄캄한 길로 눈을 돌렸다. 어머니가 치마를 한 손에 쥐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파편이 휭휭 날아다니는 길거리를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나 여기 있어" 하자 어머니는 담 밑으로 와서 나를 움켜잡고 펑펑 우는 것이었다. 파편이 날아다니는 길을 무섭지도 않은지 맨발로 나를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어떤 무서움이 와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 말이다. 나는 어린 날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이처럼 확실하게 보았다.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병석에 있을 때 어머니의 발을 주무르다 보면 맨발로 거리로 뛰어나왔던 그때가 떠올라 어머니의 발을 잡고 운 적도 있었다. 우리는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러기에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모르며 살 때도 많다.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 살아가는 기쁨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박동규 지음, 대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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