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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 속의 한줄기 빛
언젠가 선(禪) 수행자 서너 명과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상대방의 말에 계속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상대 수행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것이 아닌가! 선을 수행하는 수행자조차도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감정에 지배받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설교나 설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

이렇다 보니,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치명적인 비밀 한 가지씩은 간직하며 살게 된다. 그 사실이 알려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비밀이 누구에게나 하나 정도는 있다. 누군가를 죽였다거나 무언가를 훔쳤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지라도, 당사자로서는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비밀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러한 비밀을 환자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함으로써 환자의 육체에 나타나는 증상이나 신경의 이상을 치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환자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그 비밀을, 마치 접근할 수 없는 어두운 동굴처럼 가슴속에 지닌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어두운 동굴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신과 마주하는 것도 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남들에게는 터놓지 못할 비밀이지만 신만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신은 그 사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비로소 신을 찾게 되고 신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히려 그 비밀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 비밀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위선자-자신은 항상 올바른 사람이라 생각하며 남들에게 심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위선적인 도덕군자-는 되지 않을 것이기에.

“마음으로 마음을 얻고자 해도 오히려 마음을 잃어버리는 마음이어라.” 이처럼 인간 심리의 복잡함과 그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싯구가 있을까.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한 말을 질책하면서 마음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쓴 시이다. 이 시를 지은 스님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선한 일이 거꾸로 사람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우리는 도처에서 정의를 외치는 표어, 아름다움이나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표어들을 만나게 된다. 표어 자체는 틀림없이 좋은 목표이다. 그러나 그 표어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거꾸로 그것에 얽매이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표어를 배신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표어를 표방하는 마음 안에 숨어 있는 묘한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단순히 선, 정직, 수행 등을 지향하는 것만으로는 다루기 힘든, 모순된 면이 있다. 이러한 모순이나 자가당착의 한계에 부딪치게 될 때,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을 깨닫고 신을 찾으며 도움을 호소하게 된다.

선가 어록 같은 곳에 되풀이해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흐름을 따라 만물의 본질을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슬픔 또한 없나니.”(마나라존자) 이 말은 “모든 만물은 허황된 환영이니 환영을 만들어내는 모든 집착을 끊어버리면 기쁨도 없고 슬픔 또한 없다”라는 말과 통한다.

소설가로서 나는 이른바 불가에서 이르는 무명(無明: 번뇌에 사로잡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속세에서 죄를 짓고 비틀거리는 남녀에게 더 관심이 가면 갔지, 그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면서 이 무명 세계를 깊이 탐구해 나가는 동안, 무명 세계의 가장 깊은 어두움 속에 빛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나는 ‘즐거움도 없고 슬픔 또한 없나니’라는 대목보다는 ‘만물의 본질을 깨달으면’이라는 대목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소설을 써온 내가 겨우 깨닫게 된 사실이다. 도를 수행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그것은 자각의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쁨도 없고 슬픔 또한 없나니’라고 하기보다는 ‘기쁨도 있고 슬픔 또한 있다’는 인생의 환영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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