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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
넉 달간의 오지 여행은 내게 꿈속을 걷는 듯 황홀한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 탐험이자, 잘 알려지지 않은 지구의 속살을 엿보는 경이로운 여정이었다.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자연의 절경을 대하면서 신의 위대함을 생각했고,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 따스한 이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모든 삶이 귀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베트남에서 만났던 두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베트남 친선병원의 황혜헌 원장과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이수현 단원이 그들이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종합병원의 원장이던 황 원장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자리를 훌훌 털고 베트남의 작은 병원으로 떠났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왜 이런 생고생을 사서 하시는 겁니까?” 하고 묻자 그가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산다는 게 뭔가, 돈 많이 벌어서 호의호식하는 게 삶은 아니잖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삶을 찾고 싶었어. 삶은 자기 것보다는 남의 것을 먼저 챙겨주는 거고, 업은 먹고살기 위해 자기 것을 먼저 챙기는 거라 한다면, 나에게 병원장이라는 자리는 먹고살기 위한 업이었지. 오지에서 의료 봉사를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이곳을 선택했고 여기 일은 내 삶이야…. 혼자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속에 사는 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매 순간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길인지 고민하고, 그 길을 따라 살고자 작은 노력을 기울일 뿐이야. 세상 사는 거 뭐 있나?”

이런 분이 도인이지 도인이 따로 있을까. 그를 뒤로하고 떠난 하노이 남서쪽 로선 마을.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수현의 모습이 당찼다. 로선 마을은 베트남 소수민족 중 하나인 므엉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다. 수현은 마치 자기 집으로 가듯 스스럼없이 어느 집으로 들어가더니 집 뒤쪽의 외양간으로 향했다. 황금빛 털이 빛나는 잘생긴 소 한 마리가 수현을 보고는 반가운 듯 꼬리를 짤짤 흔든다. 수현의 눈은 소의 몸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핀다.

굿네이버스는 이 마을에 극빈층 46가구를 선정해 암소 새끼를 분양했다. 마리당 300만 동(200달러)에 달하는 암소 새끼를 분양해주고 매년 100만 동씩 순차적으로 상환하도록 하는 농가 소득 증대 및 자립 프로젝트였다. 수현의 임무 중 하나는 이들 농가를 돌며 소가 잘 크고 있는지 관리하고 점검하는 일이다. 흡족한 표정으로 외양간을 나선 수현이 향한 곳은 마을 끝에 있는 우물이었다. “굿네이버스에서 만들어준 우물이에요. 모터에 이상은 없는지, 수질은 어떤지 점검하는 일도 제 임무예요.”

지나가던 아낙들이 수현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그림 같은 자연 속에서 때 묻지 않은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이 마냥 즐겁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수현은 서울대에서 농경제학을 전공했다. 덕분에 베트남 산골 생활에 잘 적응하고, 농사일도 이것저것 잘 안다. 수현에겐 서울대 캠퍼스도, 서울도, 한국도 좁았다. 국제구호에 관심이 많아서 1학년 때부터 국제 무대로 눈을 돌려 봉사활동을 했다. 굿네이버스와 코이카, 월드비전 등에 지원서를 냈는데 다행히 굿네이버스에서 합격 통지가 왔다. 4학년이 되던 2007년 봄에 휴학을 하고, 남들은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돌입할 시기에 해외 봉사 활동을 준비했다. 누군가의 삶에 자신의 힘을 보탠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수현이 베트남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고2 때부터였다. “당시 고향 길가에 베트남 처녀를 농촌 총각의 신부감으로 알선한다는 플래카드가 잔뜩 나붙기 시작했어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도망가면 환불해드립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교환 가능합니다.’ 명색이 반만년 역사를 지닌 문명국가에서 그런 비인간적인 플래카드가 버젓이 걸려 있다는 게 정말 창피했어요.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지요.”

“제가 궁리한 양계 기술 개선 사업은 잘만 하면 베트남 농촌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소득 증대 방안이 될 거예요.” 이 사업은 수현의 손으로 시작한 첫 구호 개발사업이었다. 뜻밖에도 수현에게 5,000달러의 사업비가 떨어졌다. 수현은 곧바로 형편이 어려운 편부모 가정 등 50가구를 선정해 교육을 끝내고 종계를 가구당 네 마리씩 나누어주었다. 별도로 사료비와 방역 약품도 지급했다. 가금콜레라로 가슴앓이도 겪었지만, 얼마 후 드디어 한 집에서 기르던 종계들이 달걀을 낳았다. 달걀 다섯 개를 손에 들고 함박웃음을 짓던 아주머니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고작 달걀 다섯 개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밝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니! 그것은 이 달걀 다섯 개가 다섯 마리 닭이 되고, 그 닭들이 또 알을 낳고, 그 알들이 또 닭으로 부화하는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의 주민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아파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도 소박한 웃음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그 작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구를 한 바퀴나 돌아야 했나 보다.

- 『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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