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함 그린은 자신이 부도덕에 빠지고 나서야 신앙이 깊어졌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은혜에 관한 한 중죄인일수록 이점이
있다는 것은 신비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대놓고 묻는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이 해괴한
은혜의 딜레마 앞에 우리가 "그럴 수 없느니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이다. 또한 이 은혜 때문에 우리는
율법주의나 도덕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은혜의 입구는 올바른 행동이나
거룩함이 아니요 오직 회개뿐이다. 죄의 반대는 선이 아니라 은혜다.

얀시는 이 책에서 "교회란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다른 죄인들을 환영하는
죄인들의 모임으로 인식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 않다면
갈수록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회를 어떻게 '은혜로' 대할 수 있겠는가? 낙태, 마약,
전쟁, 생명 복제,도덕적 타락 등과 같은 사회의 당면 이슈는 중요한 것이며 문화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임하는 무기가 달라야 한다. 도로시 데이의
말처럼 '자비의 무기'를 써야 한다."

"세인트헬렌스 산이 분화한 후 산림청 학자들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거기서 생명체가
자랄지 의아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폐허 속 땅 한 뙈기에 야생화, 양치류, 잔디 등이
뿌리를 튼튼히 박고 무성하게 자란 모습이 한 공원 직원의 눈에 띄었다. 등골이 오싹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잠시 후였다. 풀이 자란 땅은 고라니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라니가
재에 묻힌 자리에 유기물이 생겼고 식물은 거기서 싹을 틔운 것이다. 그 때부터 삼림학자
들은 죽은 야생 동물의 수를 헤아리는 보조 수단으로 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다녔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별짓는 단 한 가지 표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셨다. 이에
더하여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무슨 일을 해도 - 믿음의 기적도, 신학적 기지도, 자기를
불사르는 희생도 - 다 소용없다고 했다. 현대의 민주주의에는 새로운 예절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것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분화된 세인트헬렌스 산의 황량한
산자락에 점점이 찍힌 푸르른 땅처럼 생명을 싹틔울 수 있는 것이다."

루소는 교회가 풀 수 없는 충성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했다. 주된 관심이 내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훌륭한 이 세상 시민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책에서 얀시가
열거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루소의 이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내세를 가장 강하게 의식하고 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왔다.

"기독교에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원리가 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훌륭한 본을 따라 이것을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라는
소명을 성취하는 데 성큼 다가갈 것이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 있다. 은혜가 임할 때
시끄럽던 세상은 그 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시간이 나면 읽으려고 사서 책꽂이에 꽂아 두었지만 미뤄두고 있다가 회사에서 모임이
있어 늦게 귀가했던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우연히 뽑아들었던 것이 바로 이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 마음에 뭔가 갈급한 것이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런데 책장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필립 얀시의 의도대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 전해져 왔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가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꿈꾸면서도 늘 먼저 앞서나가는 조급한 삶을 살다 보면 한순간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또 이런 나를 찾아와 먼저 손내밀어 주시는 하나님!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 북코스모스 대표 최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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