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제가 처음으로 청계천 빈민촌에 선교하러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들어갈 때는
살아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죽어서 나오리라!" 하고 큰소리 치고 들어갔지만 한 삼사
개월 일해보니까 어떻게 힘이 드는지, 게다가 넝마주이 일을 하면서 병이 들어 열흘쯤
앓게 되니 마음이 약해지고 기운이 떨어져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떠나야지, 빈민촌에 더 남아있다간 내 명대로 못살겠구나. 이 담에 큰 목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은 그때 도와야지.' 하고 생각한 나는 <활빈교회> 간판을 내리고 짐을 쌌습
니다. 용달차를 불러오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동네 아이들 삼 사십 명이 마당
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하며 달려드는데, 그 아이들 보는 데서는 차마 떠날
수가 없어 '안 되겠다, 밤에 야간도주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빨리 밤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이 집 저 집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갈 데 없어서 청계천 썩는 물가에서 살아가는데, 나는 갈 데
있다고 짐을 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양심에 가책이 되는지, '남아 있
어야 하나? 가야 되나?' 하고 주저주저했습니다. '아이고,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신경쇠약
걸리겠다. 빨리 가야지, 밤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가버리자.' 나는 발걸음을 급히
돌려 짐을 가지러 교회로 향했습니다.

모퉁이를 돌면 교회입니다. 그 모퉁이에 있는 집은 교회 옆이기 때문에 평소에 잘 알던
집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는 집인데 열세 살에서 세 살까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그 집에 삽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방문 앞에 다섯 명 아이들의 신발이 다 흩
어져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 애들이 교회 마당에 나와 놀지
않고 한낮에 방에 들어가 있을까?' 나는 문을 두드리고 열어 보았습니다.

방안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주욱 나이 순서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들 이마를 짚어
보니 열은 없는데 모두들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열세 살 먹은 제일 큰 녀석이 일어나
울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배고파요. 엄마 아빠는 사흘 전에 장사 나가시곤 안 들어
오셔서 우리 모두 굶었어요."

그 엄마 아버지는 청계천 6가 뒷골목에서 손수레 장사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분
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사흘째 안 들어오시니까 이 아이들이 그 동안 굶어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형이 배고프다고 우니까 동생 네 명도 따라 앉으면서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은 배가 고파 우는 어린아이의 눈물을 볼 때입니다. 창자가 아픈 듯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약 2초 동안 가만히 제 얼굴을 보다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예수님은 내가 이 마을에서 떠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구나.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내가 나가서 훌륭한 목사가 되어 큰 일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마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함께 사는 것을 원하시는구나!'

나는 즉시 가게로 가서 국수를 사다가 끓여서 여섯 그릇을 만들어 애들과 함께 한 그릇씩
나누어 먹고, 교회로 가 내려놓았던 <활빈교회> 간판을 다시 걸고는 싸 놓았던 짐을 풀었
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그애들의 엄마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아이들 부모님은 길가에서 허가 없이 장사한다고 도로 교통법 위반으로 걸려서 동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열 이틀을 살게 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아이
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어머니는 잡히자마자 경찰관에게 빌었답니다. "내가 열 이틀
살고 나가면 우리 애들 굶어 죽소. 우리 동네에 활빈교회란 데가 있으니까, 연락만 해주소.
교회가 애들을 돌봐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연락을
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엄마가 아이들 때문에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마의 통곡 소리를 듣자 이내 자지러지게 울며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동대문경찰서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다고 제 일터를 벗어나려 했을 때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
눈물 속에서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게 해주심을.... 자식을 먹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절망을 통해서 제가 죽어야 할 자리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제겐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으나 제가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들의 눈물이 없어질 때까지 같이 사는 것, 그 한가지 하겠습니다.
자식을 굶기고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절망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이 사는 것,
그것을 하겠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그때 드린 기도를 기억하면서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
습니다.



- 김진홍 저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두레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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