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이엄의 인디애나폴리스 전도 대회가 열리고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800킬로미터쯤
떨어진 토론토의 중산층 지역에 템플턴이 살고 있는 현대식 고층 건물이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25층으로 올라가 '옥상 주택'이라고 표시된 문의 놋쇠 문고리를 두드렸다.

옆구리에는 템플턴의 최신간 서적을 한 권 끼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신앙에 대한 그의 시각을
더할 나위 없이 분명히 보여 주고 있었다. Farewell to God: My Reasons for Rejecting the
Christian Faith(하나님과의 작별: 내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이유). 신랄한 어투의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예증을 제시하면서 믿음을 공박하는데, 그중 특히 뭉클하게 와 닿는
부분은 치매의 참상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책에는 사람의 정신과 기억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정체감마저 흉측하게 빼앗아 가는 치매 과정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따져 묻는다. 하나님이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토록
소름끼치는 질병을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묘한 심정으로 템플턴의 문 앞에서 응답을 기다렸다. 책에서
처럼 그렇게 전투적으로 나올까? 빌리 그레이엄에 대해 신랄한 자세를 보일까? 나와의 인터뷰
에 잘 응하기는 할까? 이틀 전 짤막한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허락하면서 그는 막연히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었다.

문이 열리고 옥상 정원에서 막 화분 손질을 마쳤다는 그의 아내 매들린 템플턴이 나왔다.
"시카고에서 먼 길을 오신 분한테 차마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남편은 지금 아주 안 좋아요."
"그러시다면 다음에 다시 와도 됩니다." 나는 말했다. "남편 상태가 어떤지 한번 보고요."
그의 아내는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지나 위층의 고급 아파트로 나를 안내했다.

그때 83세 된 템플턴이 침실에서 나왔다. 수척하고 창백했지만 잿빛이 감도는 벽안의 눈동자
는 총기가 있었고 표정도 풍부해 보였다. 그는 정중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몸이 이
모양이라 미안합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마치 남의 얘기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나는
곧 죽을 몸이라오."

"어디가 불편하신데요?" 나는 물었다. "치매라오." 그의 대답에 나는 아차 했다. 치매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라던 그의 글이 퍼뜩 떠올랐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책의 동기를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억력이 전과 같지 않소. 치매는 치명적인 병이라오. 멜로드라마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내 운명은 정해졌소. 조만간 이 병이 날 죽일 겁니다. 그 전에 내 생각부터
가져가겠지만."

"말씀 중간에 죄송하지만, 지금 인터뷰할 기분이 아니시라면...." 그러나 템플턴은 강경했다.
그는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현대식으로 밝게 꾸며진 거실 유리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고, 그 너머로 숨가쁜 도시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쿠션 의자에 앉았다.
단 몇 분 사이에 템플턴은 활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전도자에서 불가지론자가 된 경위를 설명해 달라는 거지요?" 그는 믿음을 버리게 된 사연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간혹 얘기를 반복하는 등 치매의 증상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는 달변가다웠다. 어딘지 귀족 티가 있는 어조 때문에 마치 극중 대사를 읊는 인상을 풍
기기도 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 특별한 요인이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내 질문에 잠시 생각
하던 그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라이프>지에 실린 사진이었소." "사진이요? 어떤 사진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그는 다시금 그 사진을 응시하기라도 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저만치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프리카 북부의 한 흑인 여자 사진이었소.
그곳은 처참한 가뭄을 겪고 있었소. 여자는 죽은 아기를 안고 한없이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지요. 그 사진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소. '이 여자한테 필요한
거라곤 비뿐이다. 그런데도 비를 내려 주지 않는 신이 과연 사랑과 자비의 창조주란 말인가?'"

그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한층 격렬하게 캐물었다. "악마가 아니고서야 누가 아기를 앗아
가고 그 엄마마저 고통으로 죽어 가게 할 수 있단 말이오? 필요한 것은 비뿐인 그 상황에서
말이오... 그때가 절정의 순간이었소. 그 후 나는 세상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소. 지구 구석구석을 휩쓸며 보통 사람, 훌륭한 사람, 못된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을 무차별하게, 또 대부분 고통스럽게 죽이는 온갖 재앙을 생각하기
시작했소. 그러면서 더없이 명백해진 사실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 사랑의 신의 존재를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소." 템플턴은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히던 이슈로 들어
서고 있었다.

다음 질문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연세가 드시고 이렇게
치명적인 병이 찾아오면서 혹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까 걱정되느냐고?" 그가 불쑥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오." 나는 다시 물었다. "믿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까?" "그야 물론이지요!"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믿을 수만 있다면 믿고 싶소. 내
나이 이미 여든셋이오. 게다가 치매에 걸려 곧 죽을 몸이지. 하지만 나는 평생 해 온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거요.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칩시다. '이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병이 든 건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길을 중간에 저버린 데 대한 하나님의 벌입니다.' 그런다고
내 생각이 바뀔 것 같소?"

그리고는 자문자답하듯 힘주어 선언했다. "아니오, 아니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랑의
하나님이란 있을 수 없소." 그의 눈빛이 나를 마주했다. "있을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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