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토마스 지음/전의우 옮김/CUP/305쪽/11,000원)

나는 열 살 때 무릎을 꿇고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다. “하나님, 당신을 볼 때까지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잖아요? 그러니 내게도 나타나 주세요!”오랜 침묵이 흘렀다. 무릎이 아프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났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은 어린 내게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 때 나로서는 30분의 시간을 드리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적어도 수년 후 모세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까지는 그랬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으며 그 즉시 구름이 산을 덮었다.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모세는 엿새 동안이나 산에서 기다려 겨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엿새 동안이나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는가?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메시지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심각한 동기가 아니라 지루함 때문에 우상 숭배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지루했다! 기다리느라 지쳤다. 이것만으로도 거짓 신들에게로 얼굴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돈을 요구한다면 수표를 써줄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루함을 참으라고 해보라. 우리는 텔레비전을 켜거나, 신문을 집어들거나 라디오를 켤 것이다.

현대 문화는 ‘우상’에 취한 문화이다. 너나없이 시끄럽고, 혼잡하며, 급한 삶을 살아간다. 옛 영성가들은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과 고요함을 드리라고 촉구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영적인 ‘숨바꼭질’ 게임을 찾아냈다. 영성가 페네롱은 말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그치지 않으신다. 그러나 밖으로는 피조물들의 소음과, 안으로는 우리의 열정이 우리의 귀를 멀게 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영혼이 깊은 고요 가운데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을 침묵시키고, 우리 자신까지 침묵시켜야 하며,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음성은 들을 귀를 가진 자만이 들을 수 있는 부드럽고 세미한 음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음과 흥분과 일에 중독되어 있을 때,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영적 고요의 문을 여는 것은 영적 두려움과 고독의 문을 여는 것일 수 있다. 하나님과 마주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파스칼은 말했다. “우리는 속도를 늦추면 내가 깊이 느끼는 고통이 나를 엄습하지 않을까 두려워 그 고통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멍하고 바쁘게 살려고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아찔한 속도로 달려간다.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하게도, 사실은 끊임없이 두려움에 싸여 살면서도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체한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오락을 제거해 보라. 그러면 아우성을 치며 금방 자신들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낄 것이다. 아무런 오락의 수단도 없이 자기 성찰로 내몰리는 바로 그 순간만큼 비참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오락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불행을 증명해 준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다면 행복을 위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창조된 본성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만 충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이 충만함은 고요함 속에 감춰져 있다. 고요함이 없으면 우리는 쉼을 얻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버린다. 오락에 중독된 우리는 싸우지 않고는 이 고요함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은 오락을 달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다시 오락으로 돌아가게 놔둔다면, 우리는 결코 단순함의 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나기를 원한다면 두려움과 지루함을 몰아내야만 한다.

하나님은 계시자일 뿐 아니라 치료자이시기도 하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은 피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요함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를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과의 더 깊은 교제로 인도하여 치료하시기 위해서이다. 영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나약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할 필요가 없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워 그분을 피하여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옛 영성가들은 고요함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단순함의 훈련들을 제시한다:

마음을 지키라.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이를 위해‘하나님께 초점 맞추기’는 단순함을 유지하고 복잡함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말을 아끼라. 영적인 사람의 표시는 설교하는 혀가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다. 영적인 사람은 자신의 음성을 듣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한다. 단순함은 우리가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해준다.

호기심을 제한하라. 우리는 작은 스캔들 냄새라도 맡게 되면 항상 그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심은 우리의 영혼을 죽인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재판관이 될 필요는 없다. 인스턴트 정보를 쏟아내는 요즘 시대는 우리가 알 필요도 없는 일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처럼 쉴새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은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의 생각을 사소하고 일시적인 문제에 매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노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부분에 집중하고 우리의 지도자로 세운 사람들을 신뢰하면서 우리가 메우지 못하는 틈은 하나님께서 메우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책임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묵상 후에는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라. ‘영적 묵상’이라고도 불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오늘날의 바쁜 사회에서는 대부분 잊혀진 기술이나, 우리는 이 묵상을 통해 진리를 발견한다. 진리가 우리 마음에 처음 심어질 때는 아주 미약하여, 잡초가 꽃을 질식시키듯이 분주한 마음은 이러한 영적 진리들을 질식시킨다. 이른 아침의 기도에서 곧바로 시끄러운 현실로 돌아온다면, 이것은 하루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작은 꽃송이를 밟아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진리를 발견했다면 마음에 깊이 새길 시간을 가져라. 이 때, 텔레비전과 함께 전화의 횡포도 놔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마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큰 죄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얼마간 미룰 수 없을 만큼 긴급한 전화는 거의 없다.

옛 영성가들은 단순함이 가져다 주는 유익은 단순함이 요구하는 희생보다 훨씬 크다고 가르쳤다. 단순함이 주는 유익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이해를 얻는 것이다. 내적으로 단순할수록 힘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른 유익은 내적 평안과 힘이다. 현대인들은 외적인 것들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내면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말했다. “고요한 기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름발이다. 지식인이 깊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신불수의 몸을 가진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손과 발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손과 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단순함은 기도로 향하는 통로이며, 내적인 힘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단순함은 짐이 아니라 자유다!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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