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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1997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러니까 둘째딸을 낳고 9개월쯤 뒤였던가, 나는 어떤 출판사의 제의로 20여 명의 여성들과 사이판에 가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지금도 그 여행의 기억이 생생한데 그건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기 때문도, 공짜여행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된 이유는 그 여행에서 내가 집에 있는 내 딸들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한자리에 불러 한판 한풀이를 벌였기 때문이다.

3박4일 여행일정은 새벽부터 밤까지 빽빽했지만 그 곳에 간 우리들은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밤새도록 잠들 줄 몰랐다. 그때 나는 우연히 소설가 공지영 씨와 한 방을 썼고 그와 쉼 없이 수다를 떨었다. 자세히 기억할 순 없지만 마더걸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참 신나서 떠드는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공지영 씨가 엉뚱한 말을 했다. "미라 씨, 엄마를 굉장히 증오했구나."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일순 당황했다. "아니에요. 난... 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엄마를 증오하기도 하죠." "그래도 미라 씨는 더 심했던 것 같아요." "......." "미라 씨는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혹독한 벌을 주니까, 그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사랑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그러니까 미라 씨는 엄마를 미워해도 돼요. 감정에는 선악이 없어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슨 말이든 더 하고 싶었지만 몇 마디 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복받치는 울음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우리... 오빠들이랑 나는... 정...말... 애를 썼어요. 일찍 남편을... 잃은... 엄마, 그... 엄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그렇게 밤새 꺼억꺼억 우는 나를 쓰다듬어 주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도 나빴어요. 그렇게 어린 딸을 두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미라 씨가 고생을 한 거잖아요. 아버지의 도리를 다 못한 거니까 거기에 대해선 아버지를 원망해도 돼요."

그렇지만 우리 삼남매는 한번도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우리 사회에선 늘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가여워하고 죄스러워하지 않던가. '남편 죽인 여자', '애비 없는 자식들'. 이게 남은 가족들의 멍에였다. 내 울음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울어요, 더 많이 울어요. 지금 미라 씨는 엄마를 만나는 거예요."

그래. 엄마와의 관계는 죽음으로 끝이 났다. 모녀간에 쌓인 애증의 응어리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엄마는 내게 죄책감만을 남겨놓고 떠나신 것이다. 부모와 사별해 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죽음으로 끝난 갈등은 미움이 깊었을수록 죄의식도 크다는 것을. 그걸 해결하고 싶어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 줄창 어머니 이야기를 했나 보다.

어머니는 내 나이 스물다섯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8년만의 일이었고,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꼭 1년 뒤의 일이었다. 그 1년, 고통의 터널은 참 길고 견디기 어려웠다. 남들은 스물다섯이면 어머니와의 사별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난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어머니에 대한 정신적인 의존도가 높은 마더걸이었다. 그리고 한창 삶에 대한 의욕으로 충만할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게다가 어머닌 거의 다 죽은 육신을 부여안고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야 살 만한데, 이제 한시름 놓고 너희들과 재미있게 살려고 했는데, 왜 나를 이렇게 죽게 만드니?"

그 엄마를 떠나보내고 우리 삼남매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왜 좀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왜 좀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 왜 건강하실 때 더 기쁘게 해드리지 않았을까.... 아니, 엄마의 병은 결국 마음고생을 시킨 우리가 만들어드린 거야....

아버지가 내 나이 일곱 살에 돌아가시자 늘 시름시름 앓던 엄마는 몸을 털고 일어섰다. 그때부터 우리 네 식구의 지난한 삶의 여정이 시작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1970, 80년대 한 가족이 가장인 아버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풍파에 시달림을 의미했다. 어린 우리들은 오로지 엄마의 치맛단을 꼭 붙잡고 그 과정을 지나왔다. 특히 오빠들보다 7, 8세나 어렸던 나는 더욱 그랬다. 엄마는 나에게 있어 온 세상이었다.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엄마가 혼자 되뇌는 말을 듣고,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가 지샜던 불면의 밤들을 함께 보냈다.

그래, 그런 어머니를 너무나 그리워하지만 한때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도 있었다. 엄마의 억지와 폭력과 엄마의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엄마의 기질이 워낙 강해서 우린 엄마에게 항변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컸다. 자식들이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펄쩍펄쩍 뛰다 마침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자해공갈단이 되곤 했다.

나는 울다가 울다가 기운이 다 빠져 잠에 들었고, 두세 시간이 흐른 뒤 눈을 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참 놀라운 아침을 맞았다. 깨달음을 얻은 뒤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머리는 아주 차분했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내 딸로 이어지는 인생의 고리고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엄마의 히스테리와 억압, 그런 엄마를 닮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어김없는 엄마의 모습으로 딸들을 대하는 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해서 아이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내 인생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어버리곤 했다. 아... 이를 어쩌나.

여행을 다녀와서 며칠 뒤 나는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소리를 질러가며 반항했다. 엄마가 눈을 부릅뜨며 분노하는 게 마음속으론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우리를 놔줘요. 나도 이젠 엄마를 미워하고 싶어요. 엄마도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엄마가 너무 불쌍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건 엄마 몫의 고통이에요. 그걸 억지로 우리에게 짊어지게 하지 마세요. 나도 내 몫의 고통과 외로움이 있어요. 그걸 짊어지고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단 말이에요."

그 여행을 다녀온 뒤로 몇 년이 흘렀다. 나는 내 안에, 상처로 인하여 성장을 멈춘 작고 철없는 아이가 한 명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장을 멈춘 아이는 보통아이들과는 달라서 칭얼거리기만 할 뿐 순수하지도 귀엽지도 않다. 그 아이가 이제껏 내 어머니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성장을 멈춘 이유는 내 어머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혹독한 교육 때문인지, 또는 어머니의 과도한 사랑 때문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우리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그런 아이가 하나 있었다는 사실을. 아니, 더 많은 아이들이 웅숭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체 높은 경기 김씨 가문의 딸이었던 우리 외할머니, 그 할머니가 식민지시대 일본군들도 머리를 조아렸다는 경기도 지방의 부호 백씨 집으로 시집와서 딸만 내리 둘을 낳고, 청상과부가 된 후 서리서리 쌓아뒀던 한이, 딸이었던 내 어머니 가슴속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한 독이 되었을 게다, 분명.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할머니의 모진 구타에 가위눌려 한밤중에도 소리 지르며 일어나시곤 했다. "꿈에서 너희 외할머니가... 옛날에 어렸을 때처럼 나를 부엌바닥에 짓이기고, 머리채를 휘어잡아 흔들고... 그래서 울다가 깼다." 하시며.

그러고 보면 우리 모녀관계는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니었다. 뭔지 모를 공포와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 두 여자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키워낸 것이다. 그런 걸로 치면 어머니, 날 제법 그럴듯하게 키우신 거예요. 아주 훌륭하게 최선을 다하신 거라구요, 나는 요즘 어머니에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쨌든 지금은 안다. 어머니 때문에 내 안의 아이의 성장이 멈췄다고 하더라도 이젠 스스로 그 아이를 키워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 박미라(여자와닷컴 컨텐츠 팀장,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 현 부사장. )
<엄마가 없어서 슬펐니?>(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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