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테크의 진성현 사장, 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기술로 몸담은 회사에서 묵묵하게 맡은 소임을 열정적으로 해냈다. 회사생활을 할 당시에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순간순간 참으며 좋은 선택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3,200여 평의 대지에 수동변속기 부품 생산라인을 갖추고 100여 명의 직원들이 한 가족으로 일하는 알찬 기업의 오너가 되었다. 현장 출신이라 사장이 되고 나서도 손톱 밑에 기름때가 지워지는 날이 없을 정도로 기계를 만졌다. 그 결과 명진테크는 창업 당시 연간 3억 원대의 매출에서 10년 만에 매출 420억대로 140배 이상 성장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강한 중소기업이 되었다. 그는 지나온 날을 회상하면서 자신에게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진성현 사장은 첫 번째 기회를 맞이하지만 돈이 없어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부산이 신발의 메카로 한창 발전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신발용 프레스 기계를 만드는 아주 작은 회사에서 일했다. 단출하게 사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자신, 이렇게 몇 명이 함께 꾸려가는 회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고 회사는 주인을 잃었다. 사장의 가족은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회사를 맡아 운영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용기가 없었다. 아니, 돈이 없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잘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가족 외에 돈을 빌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사회초년병 시절이었다. 밀양의 한 시골마을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자란 그는 집에 돈을 마련해달라고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기회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아쉬움을 달래며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첫 번째 기회였다. 그는 또다시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평소에 미리 준비해놓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두 번째 기회는 결혼하고 나서 S금속이라는 회사에 입사한 뒤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무렵 찾아왔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기에 기술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목을 빳빳이 세울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사장이 중역들과 함께 불시에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생산팀장이었음에도 시험 장비가 고장 나서 그걸 고치려고 외부 특근 중이었다. 현장을 방문한 사장은 생산관리 팀장을 찾았는데 그가 외근 중임을 알자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생산팀장이 업무시간에 허락도 없이 시험실 일을 보러 외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사직을 권고받았다. 1988년 입사해 1996년까지 성실하게 일해 왔는데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 S금속 사장은 친구와 동업하여 폐배터리를 가공해 납을 추출하는 개인 공장을 울산에 세웠고 진 사장을 그곳으로 발령했다. 친환경적 사업이었지만 생산 현장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울산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한 첫날 ‘과연 이걸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동차용 폐배터리 안에는 최고 품질의 납이 있었지만 석면, 황산과 같은 독한 중금속도 함께 들어 있었다. 열악한 환경과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처에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왕 그만둘 회사라면 제대로 일을 해놓고 그만두고 싶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폐배터리 납제련 공장에 적응하며 일하고 있는데 IMF가 터졌고 상황은 급변했다. 과거에는 폐배터리가 그냥 버려졌지만 외환위기 이후 원자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폐배터리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원가 걱정이 없었던 친환경사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버렸다. 동업자인 S금속 사장과 친구의 갈등으로 현장을 개선할 만한 어떤 여건도 마련되지 않아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공장을 매물로 내놓았다. 경기도에서 주물을 하는 사장이 공장을 인수하기로 하고 가계약까지 성사가 되었다. 그가 찾아와 진 사장에게 공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월급도 좋았고 고급차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기회 역시 오랜 고민 끝에 고사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직장생활 수십 년 동안 꿈꿨던 사장이 된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러나 계속된 자격지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행정적인 일 처리 능력이 부족한 그로서는 자신보다 더 잘나고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다룰 자신이 없었다. 공부가 안 되어 있었다. 멍석이 깔렸는데 발을 빼야만 하는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렇게 두 번째 기회가 날아갔다.

결국 그가 일하던 울산의 폐배터리 납 제련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고 다시 S금속의 자회사로 복귀하여 일하게 되었다. 그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S금속의 자회사 중 하나가 청기와 굽는 공장 옆에 있었다. 그런데 청기와를 만드는 황토흙이 금속 가공 설비에 들어가 기계가 자주 고장이 났다. 고장 나고 고치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다 공장을 S금속회사 가까이에 있는 임대공장으로 옮겼다. 그 후 매월 3천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 공장이 되었다. 그 때 S금속 사장이 1억 5천만 원에 공장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제야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자신에게 찾아온 세 번째, 마지막 기회다. 이제 더 이상 놓칠 수 없었다. 월 매출 3천만 원의 작은 회사지만 성공이 눈앞에 보였다. 자신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돈이 없어 놓쳤고, 두 번째는 자신이 없어 놓쳤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천만 원만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부산의 24평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거기에 두 아들 학자금으로 모아놓은 평생예금을 해지했다. 그 돈으로 드디어 자신의 공장을 갖게 되었다. 명진테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직원은 6명, 매출은 월 3천만 원이었다. 매월 원자재 대금을 결제하고 직원들 월급 주면 살림살이는 빠듯했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월 30억 이상의 매출을 자랑한다. 딱 10년 만의 일이다. 연 매출은 420억이 되었고 베트남에도 진출하여 4,000여 평의 대지에 연 100억의 매출을 올리는 우수 중소기업이 되었다. 인생 세 번의 기회 중 마지막 기회를 움켜잡은 그는 그렇게 성공을 거두었다.

- 『제로 플러스』 중에서
(박상복 지음 / 글로세움 / 304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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