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유 외 지음/홍익출판사/366쪽/16,500원)

홍콩의 세계적인 갑부 리카싱은 어릴 적부터 비즈니스 세계에서 단련된 탓에 싸우기 전에 먼저 전략을 세우는 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늘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해 두면 성공하고, 준비해 두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심어 주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가 플라스틱 생산업체인 장강공장(長江工場)을 운영할 당시, 홍콩에는 무려 300개가 넘는 플라스틱 공장이 있었는데 장강공장은 그 가운데 중간 정도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평범한 젊은이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리카싱은 오래 전부터 눈을 세계로 돌려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영문판 「현대 플라스틱 Modern Plastics」이라는 전문잡지를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한 회사가 플라스틱 원료를 이용하여 플라스틱꽃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을 대량 생산하여 유럽과 미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뉴스를 다른 잡지에서 본 소식과 연결해 보았다. 즉, 서구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이 전문 직업여성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리듬에 비해 집안을 가꿀 틈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사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造花)와 전문직업여성들의 여유시간 부족이라는 두 가지 사실은 전혀 별개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리카싱의 뇌리에는 전광석화처럼 한 가지 아이디어가 꽂혔다. "구미의 가정은 모두 집 안팎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바쁜 생활 때문에 사람들은 직접 정원을 가꾸거나 집안을 꾸밀 시간이 없다. 플라스틱꽃은 바로 이런 욕구를 총족시켜 줄 것이다."

플라스틱꽃이 나오면 플라스틱 시장 자체에도 한바탕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을 좋아해서 생명력이 없는 플라스틱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얼마 동안은 반드시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꽃 시장을 맨 먼저 장악하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곧장 이탈리아로 날아가 직접 플라스틱꽃의 생산 과정과 판매 시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홍콩에서 온 바이어 신분으로 그 회사를 찾아가 플라스틱꽃을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카싱은 플라스틱꽃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플라스틱꽃에 관한 여러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거기서 리카싱이 얻어들은 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상식일 뿐, 플라스틱의 배합 비율이나 착색 방법 같은 기술적 노하우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리카싱은 도서관이나 관련업체 등을 들락거리며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시간만 허비할 뿐 얻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리카싱이 실망한 채 호텔에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그 플라스틱 회사의 공장에서 일용직 공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난 게 아닌가. 리카싱은 무릎을 쳤다. 그는 당장 공원 모집에 응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신의 비자로는 불법취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그 공장에서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불법 취업자들에게는 극히 낮은 임금만 지급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공장은 본사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홍콩 바이어 신분으로 본사를 방문했던 리카싱을 알아볼 까닭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공장에 취업한 리카싱은 폐(廢)재료를 처분하고 청소하는 고된 부서에 배치되었다.

남들 같으면 이런 부서에 배치되면 당장 그만둘지 모른다. 플라스틱 폐재료는 유해성 물질로 인해 한두 시간만 일해도 머리가 아프고 심신이 피곤해지는 등 무척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카싱은 쾌재를 불렀다. 이 작업은 작은 수레를 밀고 작업장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리카싱은 모든 생산 과정을 익히게 되었지만, 기밀에 해당하는 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다시 묘안을 냈다. 휴일에 공장 친구들을 초대해서 시내 중국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다. 그들은 각각 한 가지씩 다른 기술 공정의 전문 기술자들이었다. 리카싱은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관련 기술을 얻어내고, 다음날부터는 그들이 일하는 현장을 돌아보면서 눈으로 직접 보고 플라스틱꽃의 제작 과정과 기술 요령들을 터득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리카싱은 시장에 가서 플라스틱꽃의 판매 상황을 조사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시장 전망을 들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맨으로서 그의 도전정신과 용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후 그는 홍콩으로 돌아와 곧바로 플라스틱꽃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몇 달 뒤 첫 작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아시아 일대에서는 처음으로 플라스틱꽃을 생산해 남들보다 먼저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도 그는 비즈니스맨 자질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그는, 플라스틱꽃이라는 게 공정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공장도 단시간 내에 모방작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 후발주자의 저가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얼마 동안은 독점상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단발상품으로 취급해서 고가 전략으로 나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독점상품을 최대한 짧은 시기에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치움으로써 시장점유율을 극대화하여 당분간 다른 업자들이 들어설 틈을 없애는 거이다. 그래서 리카싱은 영업사원을 최대한 많이 모집하여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심지어 길거리 상인조직까지 총동원하는 판매조직을 구축했다.

일주일 뒤 홍콩의 유명 백화점이나 거리의 꽃가게, 그리고 길거리의 리어카에까지 리카싱이 출시한 플라스틱꽃으로 가득 찼다. 생화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 그러나 생화 못지않은 싱싱함이 돋보이는 플라스틱꽃은 출시와 동시에 홍콩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홍콩 시민들은 주택이나 사무실, 심지어 자동차 운전석에도 리카싱이 내놓은 플라스틱꽃을 꽂았다. 한번 사면 싫증날 때까지 꽂아 놓을 수 있으니 좋고, 생화만큼 화려한데도 값이 싸니 더욱 좋았다. 꽃을 좋아하는 홍콩인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기에 연인에게, 가족에게 플라스틱꽃을 선물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한 세대 전의 홍콩인들은 지금까지도 당시 플라스틱꽃으로 인한 문화적 충격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리카싱은 이 일로 홍콩 플라스틱 업계는 물론이고 장차 홍콩을 대표하는 갑부로서 단단한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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