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소는 대지의 은총, 모성애, 생명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로 존중받고 있다. 그런데 비즈니스 세계에도 ‘신성한 소’가 있다. 즉 사업을 하는 방법에 관한 절대적인 원칙이나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져 사람들이 감히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따르는 신성한 소는 모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정말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시기도 물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효용성이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칙들이 그대로 살아남아 여전히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성한 소가 비즈니스를 어떻게 망치는지 살펴보자.

조사 결과를 항상 믿어라
‘자신의 조사 결과를 항상 믿어라’는 비즈니스 세계의 선언 가운데에서도 그 역사가 깊은 칙령이다. 조사란 뭔가를 실행하기 전에 먼저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철저한 조사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은 생각은 그저 추측이고 예상일 뿐이다. 조사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조사 결과를 항상 믿어라.’ 이 말은 오묘한 철학이 담긴 아주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이 역시 이제 약발이 다한 신성한 소일 뿐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중국 사람들에게 차(茶)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중국인들 대다수가 거의 매일 차를 마신다. 그래서 1997년에 베이후아 음료회사에서 중국인들에게 차가운 차를 팔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베이후아의 조사 담당이사 리우 치앙은 즉시 시음회와 시장조사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차가운 차가 잘 팔릴지 여부를 평가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는 아주 명확했다. 중국인들은 차가운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응답자 가운데 60% 이상이 차가운 차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베이후아는 미련 없이 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다른 음료 회사인 슈리솅에서 차가운 차를 시장에 내놓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베이후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가슴을 쳤다. 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분명 중국에서는 차가운 차가 먹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베이후아의 리우 치앙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고심했고 마침내 조사를 실시한 기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베이후아는 한겨울에 시음회와 시장조사를 했던 것이다. 세상에!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차를 건넸으니 당연히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는 분명 중요하고 바람직한 작업이다. 그러나 조사의 결과로 나온 숫자, 그래프, 표 등은 본능적 감각이 뛰어난 인간의 직관력을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조사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조사 결과를 통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조사 결과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조사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자신의 감을 믿고 신성한 소를 굴복시키는 것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주유소는 숫자가 아니라 석유를 파는 곳이다
비즈니스계에서 또 하나의 신성한 소는 ‘숫자에 신경을 써라.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중국 석유회사 시노펙의 경우를 보자. 1998년 시노펙은 중국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더욱 커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유소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공격적 목표를 추진했다. 1998년 당시만 해도 시노펙은 독점 사업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당시 석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은 5개사에 불과했다. 그래서 시노펙은 편히 앉아서 원하는 고객을 골라가며 석유와 가스를 공급할 수 있었다. 주유소 신설 과정도 거칠 것이 없었고 수익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4년이 되자 시노펙은 중국에서 주유소를 가장 많이 소유한 석유회사가 됐다. 결과적으로 ‘숫자의 짭짤한 맛’(돈맛)도 보게 됐다. 그런데 2006년이 되자 중국의 석유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인에 의한 투자와 개발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중국 내 석유 및 가스 사업 분야에서 기업 간 경쟁이 촉진되기에 이르렀다. 시노펙으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시노펙은 계속해서 숫자에 초점을 맞춰 사세 확장을 지속했고 마침내 목표했던 수치를 달성했다. 그런데 슬금슬금 수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표 수치를 달성했는데도 어째서 ‘나머지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은 걸까?’ 분석을 해본 결과 과잉 확장이 화근이었다. 주유소 수는 늘어났지만 그 수가 늘어난 만큼 주유소당 판매량이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수익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수익은 감소한 데다 과도한 주유소 설립으로 인한 건설 및 운영에 소요되는 간접비가 상승하면서 회사 전체의 수익구조를 약화시키는 결과가 됐다.

시노펙은 곧바로 확장 사업을 중지하고 주유소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도시와 주요 고속도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회사는 다시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시노펙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숫자에만 얽매이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부상의 숫자, 직원의 수, 간접비 규모, 주유소의 수 등 그것이 어떤 것이든 숫자는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시노펙은 ‘숫자’가 아니라 ‘석유’를 판매하는 곳이다.

-『신성한 소 죽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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