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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당신 - 시인 마종기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속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내가 긴 세월 동안 엉뚱한 나라에서 꿈속을 헤매듯 살아왔듯이, 당신도 오랫동안 길고 아름다운 약속만 간직하고 내게서 얻지 못한 따뜻한 보살핌을 늘 찾고 있었던 모양이지.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미련하게도 앞으로 행진만 하는 생을 살아온 모양이지. 정말 그럴까. 그러나 어쩌겠나. 당신이 살아온 길이 어려웠듯이 내가 살아온 길도 결코 쉽고 평탄하지만은 않았지. 아마도 이제야 우리가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은, 아무리 우리의 인연이 질기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지. 그 한계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우리 사이에, 그리고 모든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 바로 그 진리의 폭풍이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일까. 내가 당신을 원망한 것도 당신이 나를 원망한 것도, 앞을 볼 줄 모르는 우리가 무모한 욕심을 품었기 때문이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너무 심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65억이 넘는 인간이 산다고 하지. 그 65억이란 숫자가 얼마나 큰지는 실감할 수 없지만 그 사이에 당신과 내가 이렇게도 오래 만나온 것은 기적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네. 당신이 외로웠던 날은 대개 어떤 날이었을까. 활짝 갠 날, 비 오는 날, 어두운 저녁녘, 아니면 한밤중? 꽃 피는 봄, 더운 여름날, 단풍 고운 가을, 눈 오는 추운 겨울밤이었을까. 그런 것들과는 관계가 없다면, 혹 주위의 인간이나 나와 관계된 실망감, 모욕감, 허탈감, 배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을 때?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시간이라는 틀 속에 감금되어 세월 속을 가고 오고 할 뿐이라고 하는군. 그런데 우리는 그 안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도 믿으면서 계속 바보스러운 말을 함부로 해온 것은 아닐지. 폭풍처럼 열정적인 사랑도 인간이라면 1년 반을 지속할 수가 없다고 하고, 강렬한 사랑 뒤에 오는 책임감조차 3년을 갈 수가 없다고 하네. 그다음은 모두가 인내심일 뿐이라는군. 강렬한 사랑에서 오는 기쁨은 대뇌의 특정 부분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옥시토신과 엔도르핀 같은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되어 혈류 내에 그 호르몬이 늘어난 결과이고. 그런데 그 신비로운 감정이, 그 호르몬의 흐름이, 2년도 가지 않아 완전히 말라버린다니…… 우리의 사랑은 그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런 허약하고 덧없는 사랑을 위해 우리는 하나뿐인 목숨을 걸기도 하고 문학은 수천 년 같은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하고도 있지.

미안해. 그 말밖에는 이제 할 말이 없네. 우리에게 세월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서 내가 남긴 약속은 점점 색이 바래가고 거짓말이나 헛소리처럼 불쌍하게도 계속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네. 모쪼록 당신에게 남은 세월이 당신을 기쁘게 하기를. 당신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현명함과 너그러움이 당신의 남은 시간에 풍족한 빛이 되어 당신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고 지혜로운 용기로 감싸주기를. 비록 초라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과거가 비바람 속에 다 흩날려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당신에게 남겨놓고 싶어.

-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중에서
(마종기 지음 / 비채 / 264쪽 / 1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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