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는 하버드에서 강연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신학이란 모든 소설처럼 그 중심이 자전적이며, 신학자가 하는 일은 가능한 한 솔직하게 인생의 굴곡과 신비로운 사건들, 판단할 수 없는 결말 등이 뒤범벅된 자기 경험을 관찰하고, 거기에 숨어 있는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들을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말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신학자이기보다는 소설가로서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내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그려보고 싶다. 그러는 가운데 내 삶의 복판에서 섬광처럼 목격했던 신학적 진실들이 다시금 빛을 발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면 그분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말씀하심을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는다. 뜻밖의 친절에 마음의 온정을 느끼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냉혹한 모습에 심장의 피가 멎기도 한다. 우리는 친구를 버리거나 친구에게 버림받는 가운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소외시켜 버리는 우리 자신의 처신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혹은 이런저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루 또 하루가 그렇듯 그냥 흘러가 버린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깨어나서 일을 한다. 생각났다가 잊어버리고, 들떠 있다가도 우울해진다. 그러나 삶의 절정에서건 내리막길에서건, 일상의 어떤 단조로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덥고 나른한 어느 아침, 나는 이 글을 집에서 쓰고 있다. 등 뒤로 벽에 걸린 고물 시계가 똑딱거리며 시간을 떠나보내고 있다. 밖으로 나가면 헛간 처마로 날렵하게 날아들었다 다시 솟구치는 제비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다. 간혹 저 멀리서 때늦은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건너편 집에서는 두 사내가 목공일을 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낮은 웅얼거림과 망치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그 소음 사이에서 어떤 정적인 고요를 느낄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오가 되자 꾸르륵 소리를 내면서 내 배가 울렁거린다.

이것들은 모두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없는 소리들이지만, 그래도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왠지 집중하게 되고, 무엇인가 대단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제비들, 수탉, 일하는 사람들, 나의 뱃속 모두가 교묘한 리듬으로 화음과 불협화음의 대위선율을 이루면서 내 인생의 소리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온 적은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이런 소리의 조합을 듣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음악은 독특하고 찰나적이며 그 신선함은 뭐라 설명할 수 없다.

그 소리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인생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나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제비의 노래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둔탁한 망치소리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때, 청각 이상의 무언가로 집중하여 들었을 때, 표현할 길 없는 호소력과 영감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는 내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인생 자체의 신비로부터 흘러나오는 선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 가운데 말씀하신다고 했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모든 사건들이 빚어내는 조화와 부조화들의 대위선율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런 방법으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자신이 세운 제3제국이 화염에 휩싸여 멸망할 때 지하 막사에서 자살해 버린 아돌프 히틀러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의 삯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혹은, 신학자와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를 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현지에서 기독교의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의 자살을 통해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한때 위대했던 영적 지도자가 공작새가 자신의 부채꼬리를 자랑하듯 자신의 겸손을 오히려 과시하는 종교적인 프리마돈나가 되어버리는 경우에는? 죄를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 받아들이고 오해한 까닭에 은혜가 오히려 죄를 짓는 기회가 되어버린다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사건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의미를 제 아무리 통찰력 있고 신학적으로 정교한 말들을 동원해서 설명해 보려 한들, 그것은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나 석양이 빚어내는 장관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것만큼이나 불확실한 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이 말씀하심을 믿는다. 그분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언제나 성육신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맞이하는 위기의 순간들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도 그분의 말씀은 육화되어 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당신의 존재와 목적과 능력을 인자하게 드러내시기 위해 사용한 알파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히브리어의 알파벳처럼 은혜의 알파벳은 모음이 없으며, 그런 까닭에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나 장막에 싸여 있고, 신비하고 비밀스러워서, 모든 믿음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고 모음들을 채워 넣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그 의미를 일부러 감추시려는 의도가 아니다. 육화된 말씀은 의미가 고정된 사전적 단어와는 달리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 의미는 우리가 그 의미를 열심히 찾고자 할 때에만 인생 속에서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구속사'라는 말도 같은 이야기의 더욱 신학적인 표현이다. 역사책이나 신문에 기록되었든, 아니면 개인적인 서한이나 일기장에 기록되었든, 모든 역사의 심연에는 거룩한 역사가 있다. 무의미해 보이는 인류의 역사와 우리 자신의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영혼의 구원과 상실의 역사가 있다.

한 아기가 태어난다. 친구를 잃어버리거나 얻는다. 왠지 모를 평안함이 느껴지거나 불길한 예감이 든다. 꿈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어둑어둑한 거리 저편에서 도와달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우리는 살면서 듣게 되는 닭 홰치는 소리, 망치질 소리,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들의 보다 깊은 심연으로부터 들려오는, 그러나 자칫 놓치기 쉬운 거룩한 말씀에 주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우리의 청력이 민감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곧 모든 위대한 설교와 예술의 역할이다.

이제 내 아이들은 다들 어른으로 성장했으며 대부분 내 곁을 떠나갔다. 긴 안목으로 볼 때 나 역시 완전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으며, 그 일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도 많이 가졌다. 이제 오십이라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니, 이따금씩 인생 전체를 회고해 보는 일에 더 익숙해졌다. 오래된 편지들을 꺼내 읽어보기도 하고 빛바랜 옛날 사진들도 뒤져본다. 20년도 더 지난 가족비디오를 다시 돌려본 적도 있다. 내가 알게 된 사람들과 싫건 좋건 간에 내 인생의 가장 깊은 자리에 흔적을 남긴 일들에 대해 반추해 보기도 한다. 소파에 앉아 수탉과 제비의 울음소리, 망치와 시계소리에 귀를 기울였듯이, 나는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 숨어 있는 '알파벳'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고, 또 살아온 지난날들의 질서 없는 소리들 밑에 흐르는 독특한 선율을 잡아내고자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워하고, 내 노력으로 얻은 것보다 은혜로 누린 것들로 인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잊혀졌던 얼굴과 음성들, 첫사랑에 빠졌던 때의 떨림, 어느 여름날 땅거미 질 무렵 날아다니는 반딧불 사이로 달음박질치던 느낌, 펜실베이니아 할머니 댁의 뽀송뽀송한 시트와 계피향과 금방 청소를 끝낸 향기로운 냄새, 하얀 눈맛, 아버지가 잘 자라는 뽀뽀를 해줄 때 볼에 와 닿던 억센 턱수염의 감촉 등.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이미 달려온 여정이 아니라 앞에 놓인 여정이다. 과거에 다녀본 곳을 탐색하는 것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이며, 과거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는 데 실패하고 있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시절 속으로도 귀를 기울여 후두음, 치찰음, 자음들의 메아리를 찾아보고, 그로 인해 그때조차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그러하듯 내 인생을 통해 말씀하셨음을 믿고자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이제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게 될 나의 인생과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단지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 <하나님을 향한 여정>(프레드릭 뷰크너, 요단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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