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스와 퓨리스의 그리스 신화는 정신 질환과 은총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오레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손자입니다. 아트레우스는 신들보다 자신이 강력함을 입증하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린 신들은 아트레우스의 가문에 대대로 저주를 내렸고, 그 저주로 인해 오레스테스의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정부를 꼬드겨 남편인 아가멤논을 살해하게 됩니다.

이 죄악은 다시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에게 저주를 가져옵니다. 그리스 명예법전에 의하면 아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아버지의 살인자를 죽일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에게 닥친 곤경에 고뇌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실행에 옮깁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살해한 것입니다.

신들은 이 죄에 대해 오레스테스를 처벌하고자 퓨리스를 보냅니다. 퓨리스는 세 하피를 이용하는데 그들은 얼굴과 몸은 여자이고 새처럼 날개와 발톱이 있는 ‘복수의 여신’입니다. 하피들은 밤낮으로 그를 에워싸고 그만이 듣고 볼 수 있는 시끄럽고 성가신 비난의 소리와 무서운 환영으로 그를 괴롭힙니다. 그로 인해 환각에 빠져 미치게 된 오레스테스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죄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녔고, 복수의 여신들은 끝끝내 그를 쫓아다녔습니다.

드디어 속죄를 마친 오레스테스는 신들에게 아트레우스 가문에 대한 저주와 퓨리스를 통해 자기에게 떨어진 천벌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곧 재판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오레스테스를 변호했던 아폴로 신은 이 모든 뒤틀린 일들이 사실은 신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레스테스는 이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결정권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오레스테스는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내 어머니를 죽인 것은 신들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 말에 신들은 화들짝 놀라고 맙니다. 그 동안 아트레우스 가에는 신들을 비난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은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신들은 오레스테스를 위해 저주의 시련을 끝내기로 합니다.

이후로 퓨리스들은 에우메니데스로 변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자비의 여신들’, ‘은총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입니다. 시끄럽고 성가시며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던 그들은 대신에 지혜의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이 신화는 정신질환이 치유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환각 속의 퓨리스는 오레스테스만이 인지할 수 있었던 그의 증후근, 즉 정신질환이라는 개인적 지옥을 의미합니다. 결국 퓨리스를 유메니데스로 변하게 한 것은 오레스테스가 정신질환에 따르는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에 기인합니다. 그는 자신의 정신질환을 사회나 그 어떤 것의 희생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신이나 운명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조건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자기 내부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정신요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치료를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비난할 것 없이 잘 사는 것보다, 비난할 신을 가지고 병든 채로 있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나는 간혹 내게 정신요법을 받고 있는 환자들 중에서 오레스테스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치유하고 자기 조상과 어린시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새롭고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한때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행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한때 저주스러웠던 것이 이제는 환영할 도전으로, 이전에 생각지 않고 싶었던 것들이 이제는 도움을 주는 통찰력으로 변합니다. 이전에 부인했던 감정이 이제는 활력의 원천이 되며, 짐으로만 여겨졌던 사건들이 이제는 선물로 보이게 됩니다.

정신요법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들은 보통 “내 우울증과 불안감의 엄습은 내 생애의 가장 좋은 일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도 정신요법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성공한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실제적인 느낌을 갖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4)


- <끝나지 않은 여행>(스캇 펙 저, 열음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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