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맥도날드 지음/두란노/296쪽/11,000원)

근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꼭 들어가야 할 사람이 있다. 그는 아흔다섯 살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 다섯 살이었으니 무려 60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셈이다. 그의 이름은 버논 그라운즈로 대학 학장을 지내다 은퇴했다. 그와 자리를 같이 할 때면 '하나님의 생명이 이 사람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온유한 성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재임시 그가 줄곧 머물던 학장실에 들어가면 마치 성전에 들어온 듯했다. 거룩한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곳 말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학교측은 그가 학생들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여전히 그곳을 지킬 수 있었고, 학교의 중심이 되어 그와 대화를 원하는 학생은 물론, 교수나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삶이 어지러울 때,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문제들이 걸려 있을 때 어김없이 버논 그라운즈를 찾았다. 나는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기품의 본질로 느껴지는 특성들을 보았기에 이십 대 초반부터 가능한 한 그를 본받기로 결심했다.

그의 성전 벽에는 오래 전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사진이 잔뜩 걸려 있다. 이 많은 얼굴 중에 내 사진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흐뭇하다. 나머지 벽은 책으로 가득하다. 문득 40년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때가 떠오른다. 당시 학장이던 그는 신입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혼살림을 저당잡힐 때까지 책을 사십시오. 그 다음에도 계속 사십시오." 우리 중 상당수는 그의 말을 믿고 따랐고 덕분에 우리는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는 내게 금세 질문을 쏟아 붓는다. 가족, 일, 장래 계획에 대한 질문들. 그는 내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 다음 영혼에 대한 질문들로 옮겨간다.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바쁜 일정 가운데도 영적 성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가?" "무슨 책을 읽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성인(聖人)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라운즈는 다르다. 그는 언제나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삶과 주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힘과 소명의 근원을 알고 있다. 하나님을 만난 그의 사연은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매우 구체적이다. 젊은 시절, 그는 삶이 너무 산만하고 조급했던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그 말씀이 바로 자신에게 주시는 조언이라고 받아들였다.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그 후로 그는 자신의 소명이 사람을 세우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했다. 사람들은 그와 대화를 하고 나면 생활에 질서가 잡힌다는 걸 깨달았고, 나아가 그의 평화로움을 본받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의 친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끈기의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어떤 역경 앞에서도 영혼이 뒤틀리거나 시들지 않도록 지켰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경험을 한 그였기에 영혼에 큰 상처가 남아 분노나 앙심을 품었을 만한데, 그에게는 작은 미움조차 자리하지 않았다. 학장 재임시 몇몇 사람들이 틈만 나면 그를 비방하고 하는 일마다 그의 동기를 의심하면서 어렵게 만들었으나 그는 한 번도 그에 맞서 싸우거나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없는 듯이 보였다. 오히려 그것을 은혜로 갚아주었으니까.

또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향성 있는 일상'이다. '지향성'은 자제나 극기를 내포한다. 일에 대한 그의 태도는 건강하고 생산적이어서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과 힘을 잘 배분했다. 단순한 생활방식을 꾸준히 유지하고, 가족에게 충실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겸손하고 성실했다. 그것은 그가 꾸준히 영적 훈련에 힘쓰고, 수많은 지도자들이 넘어간 온갖 자아도취적 충동들을 잘 물리쳤음을 의미한다. 한편 그의 삶에서 나타나는 '지향성'은 지적 엄밀함과 영적 깊이를 뜻하기도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영적으로 추구했고, 그가 하는 말은 놀라운 통찰력을 주었으며, 삶에 깊이 있게 적용할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듯싶은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자신들을 사랑하고 자신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내 삶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일을 겪었을 때, 그때도 그는 내가 다시 삶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요즘 버논은 아내와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에 산다. 건물 주인은 그 노부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그들이 그 노인 공동체에 있음으로써 모두들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갔던 날, 우리는 가까이 앉았고 예전에 그가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자주 그의 팔에 내 손을 얹었다. 그 날 그는 놀랍게도 내 많은 질문을 다 받아주었다. 대화가 끝나고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따뜻한 그의 포옹은 많은 사람들이 평생 갈망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복된 경험이다. 차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끈기'와 '영적 근성'에 얼굴이 있다면, 버논 그라운즈는 아마도 명예의 전당에 속할 얼굴, 챔피언의 얼굴이 아닐까?

- 『영적 성장의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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