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비스’란 잡지에서 세계각국의 학자들에게 “우리는 왜 불행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의견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소설가, 역사가, 철학자, 그밖에 각계 명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배경과 관점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했다. 마침내 이들이 보내온 글은 한 가지 면에서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는 도덕적, 영적 구심점의 상실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이 주최한 스티븐 호킹의 강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인간은 시간, 질료, 기회라는 과정에 의해 무작위로 우연히 결정된 존재인가? 아니면 숙명론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조건을 탈피할 수 있는 초월성이 있는가?”라는 주제가 미리 공개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을 학수고대했다. 이전부터 최고의 지성들이 고심해 온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지금도 결정론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도록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과학자로서 호킹은 결정론이 내포하는 의미를 밝혀야 할 입장이었다.

스티븐 호킹이 강의를 하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루게릭병에 시달려 심하게 신체가 망가졌기 때문에, 호킹은 자기 목소리가 아닌 음성 변조기를 통해 강의를 했다. 그는 철학이 고민하는 문제인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신중하게 서로 대비시켰다. 시종일관 질서정연하게 논증을 펼쳐나가던 그는 마침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무엇이 결정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강당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느 누구도 호킹이 말한 것보다 더 지혜로운 말을 남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호킹은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추가로 덧붙였다.

“진화의 과정은 ‘결정론’과 ‘공격’이라는 상극을 통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우리가 장기간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우리 종족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향후 100년간 서로를 파괴시키는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과학 기술을 충분히 발달시켜 인간을 여러 다른 행성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인간의 씨를 말리는 비극이나 살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호킹은 딜레마에 빠져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단순히 변화만 계속하는 진화론의 무한 변화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결정론의 냉혹한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공격과 폭력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테니슨의 시구를 빌리자면, 자연은 “맹렬히 싸우다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가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호킹은, 폭력적인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끼리 서로를 살상하는 일을 모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대안은 인간이 발명할 수 있는 기계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이라는 구세주가 과학의 날개들을 타고 와서 결정론의 공격에서 우리를 구출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에 대한 반유신론자의 해결책은 과학기술이었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공허한 해결책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마술과 현대의 과학기술은 서로 공통점이 있는 반면, 두 가지가 똑같이 고대인들의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을 한 C. S. 루이스의 말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인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영혼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으로 ‘선행과 훈련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현실의 부품을 바꾸어서 나의 열정에 맞게 조절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해결책은 ‘전문기술이나 과학기술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지금도 우리의 멈출 줄 모르는 소망인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우리는 왜 불행한가?”에 대한 진정한 해답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것이든 새것이든 신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 『진리를 갈망하다』 중에서
(래비 재커라이어스 지음 / 프리셉트 / 339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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