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처음 보았던 그 해, 내 영적인 여정은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 그림 속의 작은아들이 되는 경험입니다. 사제로서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중남미 사태에 깊이 관여하는 삶을 살면서 참으로 멀리, 그리고 널리 떠돌아다녔습니다. 생활 방식과 신념이 제각각인 이들을 무수히 만났고, 갖가지 운동에 몸담았습니다. 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떠돌이 신세라는 느낌과 피로감이 밀려들었습니다. 한시 바삐 집으로 돌아가 그림 속 지친 탕자처럼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그런 시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인 여정의 두 번째 단계는 어느 날 저녁, 영국인 친구 바트와 렘브란트의 그림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시작됐습니다. 작은아들과 내가 얼마나 똑같은지 이야기하자 바트는 내 마음을 꿰뚫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글쎄, 자넨 도리어 옆에 서 있는 큰아들과 더 닮지 않았나 싶은데?” 그의 한 마디는 나의 내면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큰아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일단 친구가 그 가능성을 들이대자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내가 우리집 맏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비롯해, 그동안 얼마나 착실하게 본분을 다하며 살았는지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작은아들처럼 육신의 쾌락을 좇아 시간과 돈을 낭비한 일도 없었으며 방탕함과 술 취함에 몰두하지도 않았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전통을 따르며, 집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전혀 새로운 내가 보였습니다. 질투, 분노, 과민하고 완고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묘한 독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불편을 입에 달고 지냈는지, 얼마나 적대감에 찌든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러고도 어떻게 그처럼 오래도록 자신을 작은아들로 여길 수 있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집에 있다는 기쁨을 온전히 맛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온갖 특권에 감사하기는커녕, 어느새 따듯한 환영을 받는 작은아들을 시샘하는, 원망 가득한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트의 예리한 지적은 내 내면생활을 돌아보는 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사제서품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가진 지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마음은 칠흑같이 어두운 구석으로 빠져들었으며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극심한 고뇌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적인 치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손길을 찾아 떠나야 할 때가 된 겁니다.

길을 나설 때 수중에 지닌 책이라고는 렘브란트나 탕자의 비유에 관한 서적들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공동체를 뒤로하고 외딴곳에 뚝 떨어져 사는 동안, <탕자의 귀향>을 그려내는 원동력이 된 고뇌의 발자취를 공부하면서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위로를 받았습니다. 실패와 환멸, 슬픔의 한복판에서 렘브란트가 빚어낸 그 찬란한 스케치와 그림들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든 허물을 다 용서하는 연민의 몸짓으로 아들을 껴안고 있는 인물, 그처럼 겸손한 하나님의 초상을 그려낼 때까지 화가는 무수한 죽음을 경험하고 한없는 눈물을 쏟았을 겁니다.

그처럼 내면의 고통이 심각하던 시기에 영적인 여정의 세 번째 단계를 소개하고 거기에 마음을 여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려준 또 다른 친구가 있었습니다. 70줄에 들어서면서부터 줄곧 지적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와 동고동락해온 수 모스텔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수 할머니는 마음이 참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말고 헤쳐 나가라고 격려했습니다.

“스스로를 작은아들이라고 생각하든 큰아들로 여기든, 결국은 아버지처럼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수 할머니는 내게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진짜 소명을 추구할 때가 됐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온 자녀들을 반가이 맞아주는 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그림 속의 노인을 잘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인물이 되라고 부르시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두 아들에게는 쉽게 동질감을 느끼는 반면, 할 일이라고는 주는 것뿐인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수 모스텔러에게 도전을 받고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 지적장애인 친구들과 지낸 지 일 년 반쯤 흐를 무렵, 비로소 영적으로 나 자신을 아버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더디고도 고된 싸움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을 찾아 되돌아온 자녀들을 반가이 맞아주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탕자의 귀향』 중에서
(헨리 나우웬 지음 / 262쪽 / 포이에마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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