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절기이며, 지혜롭고도 존귀한 방문객들이
멀리서 낙타를 타고 왔던 때, 한밤중에 마구간 앞뜰의 동물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었던 때,
그리고 전설적인 별빛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기예수로 우리에게 오셨던 때라고 믿으며 나는
성장했다. 내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항상 황홀한 시간들이었지만, 내 아들 마티가 여덟 살
이던 해의 크리스마스는 그 중 최고였다.

그 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워싱턴주, 레이몬드 근교의 수림지역에 있는 아늑한 이동주택으로
이사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다가오자 우리들의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심지어 겨울비가
퓨젓사운드만을 쓸어내려서 집이 물에 젖고 마루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는데도 기분이
우울해지지 않았다.

마티는 12월 내내 우리들 중에서 가장 생기가 넘쳤고 또 바빴다. 막내 아들인 마티는 금발
머리에 놀기 좋아하는 명랑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면, 강아지가
한쪽 귀를 쫑긋하듯이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고 올려다보는 묘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런 습관은 마티의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장애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다.

나는 수주일 동안 마티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인가가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티는 아주 열심히 잠자리를 챙기고 쓰레기를 치우며,
내가 일이 끝나고 귀가하기 전에 릭과 팜이 저녁 준비하는 걸 열심히 도왔다. 그리고 댓가로
받은 얼마 안 되는 용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 몰래 감추어 두고 있었다. 나는 마티의
이런 은밀한 행동이 잘은 몰라도 무언가 케니와 관계가 있을 거라고만 짐작했다.

케니는 마티의 친구였는데 이번 봄에 서로 알게 된 이후로 거의 붙어다니다시피했다. 둘 중
한 애만 불러도 그 애들 둘다를 볼 수 있었다. 꼬불꼬불한 작은 시냇물이 가로질러 흐르는
초원에 그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거기서 두 소년은 개구리와 도마뱀을 잡거나 숨겨진 보물을
찾곤 했으며, 혹은 다람쥐에게 땅콩을 먹이곤 했다.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절약하며 살아야 했다. 우리 가정은 고기를 포장하는
내 직업과 알뜰함 덕분에 적은 돈으로 그런대로 체면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니의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애들 어머니는 힘겹게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선량하고 건실한 가정이었고 케니 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해 아이들에게
엄한 규율을 정해 놓고 있었다.

매년 그랬듯이, 크리스마스가 되자 우리는 집안을 축제 분위기로 꾸미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우리는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겨 놓고, 직접 만든 장식들을 집안
여기저기 매달아 놓았다. 때때로 마티와 케니는 오랫동안 탁자에서 원뿔 모양의 종이 장식을
만들거나 트리를 장식할 바구니들을 짰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둘은 서로 소근거리면서
눈짓을 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밖으로 나가, 전기 울타리 밑을 조심스럽게 빠져 나가서는
우리집과 케니 집 사이에 있는 말 목장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나는 진한 계피향이 나는 땅콩 모양의 덴마크 쿠키를 빚느라
두 손을 깊숙히 넣어 '페퍼나더' 반죽을 하고 있는데, 마티가 내게로 와서 기쁨과 자랑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케니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어요. 보고싶지 않으세요?"
나는 그제서야 '그래서 얘가 지금까지 그랬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케니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거예요, 엄마!". 마티는 조심스레 행주에 손을 닦은 후,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뚜껑을 열자, 아들이 자신의 모든 용돈을 모아서
산 휴대용 나침반이 보였다.

"멋진 선물이구나, 마티"하고 말했지만, 마음속은 혼란스러웠다. 케니의 어머니가 그들의
가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끼리만 간신히 선물을 교환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케니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같은 정도의 선물을 줄 수 없는 한, 선물받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알아듣기 쉽고도 조심스럽게 마티에게 이야기했다. 그 애는 내 말을
이해했다. "알아요 엄마. 저도 알아요‥ 그렇다면 비밀로 하는 건 어때요? 그걸 '누가' 주었는지
가족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요?" 나는 마티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 지 몰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비가 오면서 날씨가 추웠고 하늘은 어두웠다. 나는 세 아이와 함께 비밀로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지막으로 손질하고 가족과 찾아올 친구들을 위해 이것 저것 준비
하느라 분주했다. 밤이 깃들었고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부엌의 싱크대 너머로 창 밖을 바라보며
묘한 슬픔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가 오다니 너무 멋없는 일이야. 동방박사가 이런 밤에
말을 타고 왔을까? 나는 의심스러웠다. 크리스마스의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은 오직 청명한 밤에만
일어났을 것 같았고, 적어도 그 밤엔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으리라.

창가에서 물러나 오븐위에 올려 놓은 햄과 레제 빵을 살펴보고 있는데 마티가 문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애는 파자마 위에 외투를 걸친 채 색색으로 포장된 조그마한 상자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목초지를 따라 내려간 다음, 전기 울타리 밑으로 재빨리
기어들어가 케니의 집을 향해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신발이 물에 젖어 철벅거렸기 때문에 계단을
발끝으로 살금살금 올라갔다. 그물문을 아주 살짝 열고는 선물을 현관 계단에 놓았다. 그리고는
숨을 깊이 한 번 쉬더니, 손을 뻗어 초인종을 힘차게 눌렀다.

마티는 황급히 돌아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와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도망가려고 급히 마당을
가로질러 달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애는 전기 울타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비틀
거리던 마티는 젖은 땅에 넘어졌다. 마티는 온 몸이 따끔거리며 아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티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비틀거리며 천천히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티!" 나는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선 마티에게 소리쳤다. 마티의 아랫 입술이 떨리고
있었고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울타리가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거기에 부딪혀 넘어졌어요!"
나는 진흙 투성이가 된 아들의 작은 몸을 껴안았다. 마티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고, 얼굴에는
입에서 귀까지 붉은 상처가 나 있었다. 급히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먹여 진정시킨 뒤 상처를
치료해 주었더니 다행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곤 이불을 꼭꼭 눌러 덮어
주었다. 잠들기 전에 마티는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엄마, 케니가 나를 못 봤어요. 못 본
게 틀림 없다구요."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말 울적하고 혼란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일인 남에게 베푸는 일,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몰래 주려고
한 어린 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하다니 너무도 속상했다. 그 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너무나 평범하고 오히려 문제 거리로 가득한
밤이라는 현실이 실망스럽게 생각됐다. 그 어떤 신비로움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비가 멎고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마티 얼굴에 난 상처 자국은 아직도 불그스레 했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선물을 펴보고 있을 때 예기치 않게 케니가 문을 두드렸다. 그 애는 자신의 새 나침반을
마티에게 보여주고 싶어했고, 그 신비스러운 선물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다. 케니는 마티가
주었으리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분명했고, 둘이 얘기하는 동안 마티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손짓도 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비교하고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마티는 머리를 비스듬히 젖히고 있지 않았다. 그 애가 들리지
않던 귀로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몇 주일 후 학교 간호사로부터 진단서 한 장이 왔는데 그것은
마티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다음과 같이 확인시켜 주었다. "마티는 현재 '양쪽' 귀의
청력이 모두 정상입니다."

마티가 어떻게 그의 청력을 회복했으며 계속 청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하나의 신비로
남아있다. 물론 의사들은 어쩌면 전기 울타리에서 받은 충격이 그 원인일 것으로 짐작한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 날 밤에 이루어진 훌륭한 선물 교환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다들 알고 있듯이, 우리 주님이 탄생하신 날 밤에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아직도 일어 나고
있다. 그리고 그 밤은 꼭 청명한 밤이어야 할 필요도, 전설적인 별이 뜬 밤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 <가이드포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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