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가 되는 법』(하이디 오치아이 지음/이지북) 중에서

16세기 일본 최고의 무사로 유명했던 추카하라 보쿠덴은 여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여행하기를 즐겼다. 그런데 한번은 혼자서 배를 타고 여행에 나섰다. 허리춤에 두 개의 칼을 차고 있는 그를 보면 배에 타고 있는 누구라도 그가 무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유명한 무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배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상인과 장인(匠人), 농부와 함께 무사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큰 목소리로 떠들면서 주위로부터 시선을 끌어 모았던 특이한 무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검술 솜씨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스스로 일본 최고의 검객 가운데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그의 자랑에 귀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단 한 사람만은 이 무사의 말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자기 일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보쿠덴이었다.

떠벌리던 무사는 보쿠덴에게 다가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쿠덴이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자, 그는 정말로 화가 치밀었다. 마침내 무사는 보쿠덴에게 결투를 청했지만 보쿠덴은 배 위에서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결투를 하다가는 자칫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사는 보쿠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배가 육지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뱃사공에게 배를 가장 가까운 섬으로 대라고 명령했다.

배가 섬에 닿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무사는 이미 흥분해 있었고, 결투에 대비해 몸을 풀려는 듯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없이 칼을 휘둘러댔다. 그러나 보쿠덴은 계속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마침내 배가 섬에 거의 도착하자 큰소리치던 무사는 외쳐댔다. "덤벼봐! 넌 이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내 칼날이 얼마나 예리한지 네게 보여주마!" 보쿠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일어날 뿐이었다. 무사는 먼저 배에서 뛰어내려 두 손에 칼을 들고 해안가로 올라갔다.

무사가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보쿠덴은 뱃사공으로부터 노를 빼앗아 배를 다시 바다 쪽으로 저었다. "야, 이 겁쟁이야!" 무사는 칼을 휘두르면서 크게 소리쳤다. 보쿠덴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이라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섬에 혼자 남아 길길이 날뛰며 큰소리치고 있는 무사를 보며 웃어댔다. 동시에 보쿠덴의 대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후에 보쿠덴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그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다.

보쿠덴이 마음만 먹었다면 까불어대는 무사를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쿠덴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자신의 검술을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무력을 쓰지 않는다. 보쿠덴은 어떤 경우든 목숨은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무조건 싸우려고만 하는 무사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사실 보쿠덴은 최고 경지에 이른 자신의 검술로 이런 하찮은 무사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고수로서의 자신감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은 그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보쿠덴은 싸우는 대신 머리를 씀으로써 오히려 실제 결투를 벌인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버릇없는 무사를 가르친 셈이었다. 만약 결투를 벌여 죽였다면 그 무사는 아무런 가르침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다치는 데 그쳤다 하더라도 무사는 보쿠덴과 겨뤄서 패배했다는 사실만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해안가에 남아 소리치게 됨으로써 이 무사는 결국 자신이 보쿠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을 버릇없는 무사뿐만 아니리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창피를 당한다는 것이 무사에게는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보쿠덴의 전술은 그 어떤 방법보다도 명확하게 이 버릇없는 무사를 무릎꿇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승자가 되는 법』(하이디 오치아이 지음/이지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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