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말이다. 그곳의 열쇠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추억은 우리를 마음속 고향으로 이끈다. 기억의 조각이 가득한 청주 수암골로 향해보자. 골목과 골목 사이에 당신이 갈망하던 고향이 있을 것이다.

기억의 조각을 지키는 곳
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달동네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터를 잡고 생활하며 형성된 동네인데, 다닥다닥 붙은 지붕과 좁다란 골목길, 갈라진 담벼락 사이로 옛 골목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다. 과거 청주 제일의 인쇄골목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동네는 바로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등의 촬영지이기도 한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2007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동네 가득 벽화가 그려지면서 더욱 새로워졌다.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지역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렸는데, 무미건조한 벽에 그림이 가득 차면서부터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동네로 재탄생한 것이다.

추억의 수암골, 나만의 추억 만들기
그림으로 그려진 수암골 아트 투어 팸플릿과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동구나무 앞 삼충상회를 수암골 여행의 출발점으로 권하고 싶다. 수암골에는 다양한 벽화가 피어 있다. 때 아닌 봄철을 알리는 붉게 피어난 동백과 동네 꼬마 아이들이 타일 하나하나에 정성껏 그린 그림들, 창문으로 눈길을 주는 꼬마 아이가 그려져 있는 그림은 수암골의 애틋한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듯하다. 수암골의 벽화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3~4시에 가장 아름답다. 황금빛 햇살은 눅눅한 세월의 때를 씻어가려는 듯 수암골 구석구석을 비춘다.

수암골에는 빈집이 많다. 오래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거주민들의 비애가 담긴 집들은 길고양이들의 놀이터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빈집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라 늘어지게 하품하는 고양이들은 관광객이 다가오면 재빨리 도망가고, 손에 먹을거리가 들려 있으면 용케 알아보고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수암골 둘레 추억 둘러보기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벽화 구경을 마치고 팔봉제빵점으로 향해보자. 팔봉제빵점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배경으로, 배우들의 친필 사인과 대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빵과 커피를 즐길 수도 있으니,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청주 시내를 조망하는 것도 좋다.

추억의 골목여행을 하고 싶을 때면 청주 수암골 벽화골목을 찾아가보자. 해질녘의 수암골은 얽히고설킨 골목 사이사이로 주황색 가로등이 빛을 발하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 『하루여행』 중에서
(이한규 지음 / 황금부엉이 / 304쪽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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